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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이용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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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앙일보는 지난 86년 2월 26일 제84화「올림픽 반세기」를 끝으로 일시중단 했던 장기 기획연재물『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9일(일부지방 10일)부터 부활한다. 제85화로 새롭게 이어지는 이번 화제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친동생인 김영주와 9개월 여 동안 중국과 서울에서 침식을 함께 하며 친구로 지냈던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상임이사 이용상씨가 반세기만에 최초로 공개하는 비화「나의 친구 김영주」다. 필자 이씨는 김영주와의 관계 비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한 8·15해방 전후의 시대 상황과 5·16당시까지의 군 부내 비 사들을『남기고 싶은 이야기』로 털어놓을 예정이다. 70년11월9일 첫 회를 시작, 16년 동안 많은 독자들의 열 독 속에 큰 인기를 모았던 장기기획연재『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부활에 독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을 새삼 기대해 마지않는다.
1946년 5월4일 밤.
나는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 박창수(신의주 동 중학교 출신·후일 한국군 부사단장 역임)·문동수(평양 고무공장 직공·후일 북한으로 귀환)와 함께 서울역에 내렸다.
우리 네 명은 중국 상해에서 배편으로 부산으로 가 해외동포 귀환열차를 타고 해방을 맞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3년 전 일본군 이등병으로 강제 징집 당해 중국대륙으로 끌려갔던 나는 중국에서 9개월 동안 침식을 같이하며「동지」로 지내던 새로운 친구 세 명을 데리고 고향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보성전문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던 내가 김영주를 만난 곳은 모택동의 고향인 중국 호남성 상담의 오지에서였다. 일본군을 탈출, 항일유격대에 가담해 싸우던 중 아주 극적으로 김일선이라는 동포를 만났다.
얼마 후에는 또 박창수·문동수를 만났는데 이들 두 사람도 일군에 강제 징집돼 왔다가 탈출한 평안도 사람들이었다.
이역만리 타국 땅 전깃불도, 라디오도 없는 벽촌에서 동포를 만난 기쁨은 그야말로.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했고 부둥켜안은 채 뒹굴기도 했다. 나는 곧 사단장 소중광 소장에게 부탁해 그들을 나와 같이 있게 했다. 그곳은 중국 중앙 군 73군 193사단 사령부였다. 김일선은 중국어에 아주 능했기 때문에 내가 일하고 있는 사령부 부관 처에서, 그리고 다른 두 동지는 수송대에 있게 됐다. 우리는 한솥밥을 먹으며 십년 지기처럼 지냈는데 특히 김일선과 나는 한방을 같이 쓰면서 생활했다. 같이 생활한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고백한다면서 자기 본명은 김일선이 아닌 김영주라고 했다.
그러니 그는 북한 김일성의 친동생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밝히지 않고 나를 그 동안 시험해 본 모양인데 합격은 아니라도 최소한 공산주의자가 될 소양이 있다고 보았는지, 아니면 반역이나 배신은 안 할 자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김일선으로 속아 온 분함도 있고 해서『왜 동지들끼리「거짓」을 범했는가』고 따졌다.
그는 태연스럽게『나는 어릴 때부터 일본이나 매국노에게 쫓기며 도피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감시와 위험 속에 있다는 경계심이 제2의 천성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의 그러한 경계심은 큰형인 김일성이『우리 3형제 가운데 철주는 죽어 버렸고 너 하나만이라도 살아 남아야 한다』며 자기를 늑대와 산 짐승이 우글거리는 북만주 광야에 밀어 던지고 시베리아로 가 버렸을 때부터였다 먼저 김일선으로 속여 온 것을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대인관계는 지극히 명랑했고 신의가 있었다.
춤 잘 추고(특히 왈츠 곡), 총 잘 쏘고, 건달기질·깡패기질도 충분했지만 안광만은 항상 또렷하게 바로 박혀 있었다.
당시 그는 25세로 갑자 생인 나보다 네 살 위였지만 언제나 나에게「동지」라는 호칭을 붙였고 9개월 후 서울에서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서로 경어를 썼다.
수천 명의 난민들이 부산에서 서울역에 도착한 그날 밤, 우리들은 미군 화물트럭을 타고 장충단 수용소로 갔는데 집이 서울인 사람이라도 그날 밤만은 방역 때문에 DDT소독을 하고 수용소에서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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