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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피고인들 혐의 인정했지만 수사 과정 위법성 지적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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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1년 만에 다시 열린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이례적으로 구형을 하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찰이 공소사실과 법률 적용에 대해 간단히 의견을 밝히는 논고(論告)를 하면서 재판부에 적정한 형을 선고해 달라는 구형을 하는 것이 관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18일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에서 검찰은 논고를 통해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의 위법성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며 "재판부는 당시 수사 기록과 의견서, 재판 기록 등을 참고해 법과 원칙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과거 기록을 보면 피고인들은 수사기관에서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증거에도 동의했다"면서도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적법 절차가 준수되지 않았다'는 증인 진술도 있었다"며 수사 및 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형사소송법 302조에는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가 끝났을 때 검사는 사실과 법률 적용에 관해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 돼 있어 이날 검찰이 구형을 하지 않은 것은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과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심 때도 구형을 하지 않는 등 주요 시국사건의 재심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해 왔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수사하다 비상군법회의로 넘어간 사건이고 재심도 법원에서 결정한 것이라 굳이 구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검찰이 구형을 하지 않고 유.무죄에 대한 입장 표명조차 없이 재판을 끝냈다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변호사도 "이번 재판은 유신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고공판은 내년 1월 2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박성우 기자

◆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5년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중앙정보부는 투쟁을 주도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의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도예종씨 등 2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 중 도씨 등 6명은 사형 확정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법원은 지난해 말 유가족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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