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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씨 『이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서정시는 객관세계(객체)를 껴안아 주판화시키는 문학양식이다. 이 경우 독자는시인이 얼마나 튼실하게 그야말로 속속들이 세계를 끌어안고 있는가에 대한 검증자인 셈이다. 그 검증을 통해 좋은 시는 독자를 시인과한몸이 되게하고 세계와 한덩어리로 칭칭 동여맨다. 그끈을 우리는 감동이라 누른다. 그 감동의 떨림판에는세계에 대한 인식이 있고 그인식으로부터 야기된 행동이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서정시의 작지만 위대한 세계참여는 개시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와 독자에 대한 관계양상일 뿐 그시인의 세계와 지향에 대한실질적인 검트가 뒷받침되지않으면 아무말도 하지 않은셈이 된다. 요컨대 내용에관심의 초점이 놓여었는 「무엇을」 그리고 형석에 관심의초점이 놓여있는 어떻게 그시가 형상학되어 있는가가검트되면서 우리는 좋은 시, 혹은 그렇지 않은 시를 가르게 된다.
수많은 진술속에 그 진가를 훼손당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절대가치를 그 내용의 측면으로,구체적 삶의 실감을 그형식의 측면으로 통합하여문학적 가능자로 선택하는일은 이미 통념이다. 그렇다면 그 통념의 내부로 들어가서 이를 정밀하게 살피는 일은 중요한 일일 터이다. 형상과 진술은 그 중 하나이다. 이것은 시, 특히 서정시의 진술형태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바 이 둘의 관계를 살피는 일은 성공적인 시의사례를 살피는 일로 될수 있다.
여기서 형상이란 뜻은 삵의 구체적 모습이 그 실감으로 그라진 것을 의미하고 진술은 그것에 대한 시인의 해석을 의미한다. 간주관(간주관)의 의미가 함유되어 있지만 서정시의 경우 세자의 주관화가 요체라 할때 한 시편에서 형상과 진술은 극심한불화관계를 노출하게 마련이다. 극단적으르 말하면 그믈은 적대적 모순의 관계로 서로를 밀어내고 나아가 그 서정시를 엿보는 독자를 불쾌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일은 시의 성패, 나아가 시의 사회참여를 가능하는 빗장의 개폐여부를 이어지는 것이다. 안도현의 최근시집 『그대에게 가고싶다』에서「이사」라는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성공사례를 논리.
『이삿짐을 실은 용달차 한 대가 지나간다
산다는 것은 기어코 저렇게
이불 한채, 솥단지 몇 개 싣고
따뜻한 방을 찾아 이사가는 것인가 보다
살림이 너무 없어 비어 있는 자리에
한 사내와 어린 것들도 짐이 되어 얹혀간다.
새로 옮겨가는 집에도 주인이 있을 것이다.』
전부 7행므르 된 이 짧은 시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하고 있는 어사풍경에 그려져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시인은 그 풍경에 뛰어 들어 발언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것인가 보다』라는 진술과『새로 옮겨가는 집에도주인이 있을 것이다』라는 진술이 그것이다. 그 외엔 시인의 눈에 비친 그야말로 벌거벗은 삶의 진실이 그려지고 있다. 이 경우 시인의 발언이너무 도드라지면 그 풍경은간데 없고 풍경이 너무 도드라지면 그 떨림은 방향없이시 속에서 침묵하고 있게 마련이다. 침묵하고 있는 형상과 발언하고 있는 진술은 이점에서 조화률 얻지 않으면안된다. 그 조화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주택현실 혹은우리 삶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껴안게 된다. 이시는 그러한 조학를 달성하고 있다.이 때 독자는 시인 안도현과다름이 없어진다. 물론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고심참담살아가는 시인이자 전직교사 안도현은 될 수 없다. 독자는시인의 실존적 조건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세계에 대해분명하게 깨닫는다.
강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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