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 말자” 손잡은 남과 북/강신성대사가 밝힌 소말리아 탈출기

중앙일보

입력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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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격 뚫고 함께 안전지대로/케냐서 헤어지며 “통일후 이웃되자”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아프리카의 오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에 휘말려 탈출로가 막힌 가운데 남북한 양측 대사와 대사관직원들이 펼친 합동 탈출작전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순수한 동포애로 이루어졌다.
『모가디슈는 지난 연말이후 계속된 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으로 총탄이 비오듯 쏟아져 정부기관과 통신시설이 거의 파괴되고 주택가와 외국공관 등에는 총을 든 강도들이 몰려와 부녀자겁탈·금품강탈 등을 일삼아 말그대로 무정부상태였습니다.』
지난 17일 귀국한 소말리아주재 강신성대사(54)는 아직도 보름동안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듯 긴장된 표정으로 당시의 위기상황을 털어놨다.
소말리아에 내전이 격화된 것은 지난해 12월30일.
미국·소련·중국 등 주요국 공관들이 철수함에 따라 우리대사관도 철수키로 결정,7일부터 이창우 참사관을 모가디슈국제공항에 대기시켜 항공편 비상탈출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이참사관과 함께 탈출로 모색을 위해 9일 아침 일찍 공항에 간 강대사는 대합실에서 김룡수대사(55)등 북한 공관원과 가족 14명을 발견했다. 『떼죽음을 당할 위기속에서 남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한민족끼리 합심해서 탈출작전을 펴 봅시다.』
강대사는 우리공관의 처지도 어렵겠지만 공항에서 집단기거태세에 들어간 북한측을 어떻게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김대사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네까』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때 공항관계자로부터 케냐의 나이로비에 있는 우리대사관이 주선한 2대의 이탈리아 군용기가 곧 도착하니 탑승자명단을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참사관은 강대사의 지시에 따라 우리측 탑승자 6명(교민 1명은 잔류희망)과 북한대사관측 14명,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소말리아주재 루마니아 대리대사 등 21명의 명단을 공항측에 통보했다.
군용기는 예정대로 날아왔다. 그러나 관계탑과의 교신착오로 엉뚱한 군사기지에 착륙,민간공항에서 대기중이던 공관원들은 이 구조기를 놓치고 말았다. 구조기는 다른 난민들을 태우고 떠난 것이다.
남북한대사는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며 서로를 위로한뒤 총격전이 계속되는 시내를 뚫고 비교적 안전한 우리공관으로 함께 되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리공관의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북한의 김대사는 날이 밝자 자신들과 국교가 있는 이집트대사관을 찾아가 카이로주재 북한대사관에 안부전문타전을 의뢰했고 카이로주재 한국총영사관에도 남한의 공관원들이 모두 잘있다는 전문을 보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 전문은 우리정부측에 도착됐음이 확인됐다.
한편 같은날 아침 강대사도 현지 경비경찰관 2명을 대동하고 6㎞쯤 떨어진 이탈리아대사관을 찾아가 구조기를 다시 요청했다.
마리오시카 이탈리아대사(45)는 12일 오후 군용기가 올 예정이나 사정상 남한측 공관원 7∼8명 정도밖에 태울 수 없다고 못박았다. 북한과 수교가 없음을 의식한 것 같았다.
강대사는 『서로 체제와 이념은 다르지만 한민족인데 어찌 그들을 두고 우리만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며 4시간 동안 마리오시카대사를 설득,확답과 함께 비행기가 올때까지 피신처가 마땅치 않은 남북한 공관원들이 이탈리아대사관에 와있어도 좋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강대사는 즉시 이 사실을 김대사에게 통보했으나 김대사도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미 수교국임을 의식한 탓인지 난색을 표시했으나 무장한 떼강도들로부터 부녀자들을 보호할길이 없다는 상황판단에서 결국은 우리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남북 양측은 10일 오후 3시55분쯤 태극기를 꽂은 6대의 승용차에 나누어타고 이탈리아대사관으로 향했다.
차량들이 이탈리아 정부군이 배치된 대사관 후문쪽으로 접근할즈음 70∼80m 전방에서 집중포격이 쏟아졌다. 앞서 가던 몇대는 차를 급히 꺾어 총격을 용케 피했으나 중간에서 뒤따라오며 운전을 하던 북한공관 통신기사 한상렬씨(36)가 왼쪽 가슴에 총 1발을 맞았다.
한씨는 총맞은 가슴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1분여 동안 초인적인 의지와 사명감으로 운전을 계속 3m를 더 가 안전지대인 대사관 후문에 도착시켜 더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 공관원들은 응급처치를 했으나 한씨는 피격 20여분만에 사망,이날 오후 10시 양측 공관원들에 의해 대사관저 구내에 매장됐다.
양측 공관원과 가족,루마니아 대리대사 등 22명은 10일과 11일 밤을 이탈리아 대사공관 응접실등에서 함께 기거했다.
우리측은 한대사,이참사관,박용원 고용원부부,교민 이규우씨(45) 부부와 아들 등 7명이고 북한측은 김대사부부와 외손자(5),참사관부부,일등서기관부부와 아들(4),한상렬 통신기사 겸 운전사부인과 아들(7),다른 1명의 통신기사 겸 운전사부부와 딸(3) 등 모두 13명.
양측 공관원과 가족들은 이 기간중 체제와 이념문제 등 서로의 자존심과 감정을 건드리는 언행을 삼가고 우리측은 고추장을,북측은 총각김치를 갖고와 나눠먹는등 다정한 이웃으로 지냈다.
12일 오후 마침내 국제적십자사 마크를 단 이탈리아 군용기 2대가 도착,양측 19명과 루마니아 대리대사 등 20명은 이탈리아대사관을 출발해 삼엄한 경계속을 뚫고 공항으로가 오후 5시쯤 소말리아난민 3백여명과 함께 탑승,2시간30분만인 오후 7시30분 케냐의 해변도시 몸바사에 무사히 도착했다.
강대사는 북측의 부녀자들이 한씨의 죽음으로 공포감에 질려 있음을 감안,공항까지 갈때 이들을 이탈리아대사가 탄 방탄차에 태웠다.
천신만고끝에 전쟁터를 탈출한 양측 공관원과 가족들은 몸바사공항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다』『통일이 되면 다정한 이웃이 되어 함께 살자』는 등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주고 받으며 잠시나마 뜨거웠던 동포애를 아쉬워했다.<김국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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