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없이 주행하는 4단계 이상의 완전자율주행차 산업 관련 경쟁이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술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이미 완전자율주행 시대에 바짝 다가섰고, 미국 웨이모와 중국 바이두 등 선두 기업들은 로봇택시 상용 서비스 지역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필자는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방문길에 웨이모 로봇택시를 시승한 경험이 있다. 시승 전까지만 해도 자율주행 분야의 고난도 기술 개발은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어려운 기술은 운전자 간에 상호 교감하는 기술이다.
미·중은 이미 완전자율주행 접근
한국은 4단계 시험주행도 제한적
규제 철폐하고 기업 경쟁 시켜야
인간 운전자는 차량을 운전할 때 많은 경우 상대편 차량 운전자와 알게 모르게 의사소통을 한 뒤 진입하거나 양보할 때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런 행위는 서로의 눈치와 직감에 의존해 이뤄지므로 당연히 자율주행차에 이러한 능력을 논리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승한 웨이모 자율주행 차량에서는 이런 임무를 부드럽고 안전하게 인간처럼 수행했다. 좁은 사거리 신호대기 상황에서 다른 차량이 반대편 차로로 진입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후진하고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상당한 기술적 충격이었으며 이미 자율주행차가 우리 일상 속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4단계 자율주행의 상용화는 고사하고 안전운전자 없이는 시험주행도 못 하고 있다. 10년 전 자율주행 기술이 초보적일 때 안전을 고려해 안전운전자 탑승 규정을 시행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규제가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업들이 이 보호막의 뒤에 숨어 난이도 높은 기술 개발을 미루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몇몇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지역 시범사업에 기술력 검증이 제대로 안 된 업체들을 참여시켰다가 사업 지연 및 중단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여러 부처가 참여한 사업으로 7년간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오는 국가 연구 개발 사업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완전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가 이뤄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한국에서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 도전 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 투자가 필수다. 완전자율주행 기술은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한 대표적 기술 분야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웨이모와 바이두는 이 분야에서 적어도 15년 이상 수십조원의 투자를 꾸준히 해왔고, 그 결과로 이제 겨우 작은 결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 사업이든 민간 투자든 여러 기업에 조금씩 나눠주고 고만고만한 결과물을 기대한다. 단기적으로 소액의 나눠주기식 투자 패턴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모험을 감행하는 대신 생존을 위해 눈앞의 돈 되는 일만 하려고 할 것이다.
둘째, 기업들이 완전자율주행의 비즈니스 모델과 연계된 기술 개발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과감히 규제를 철폐하고 산업 생태계를 혁신해야 한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든 안전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을 과감히 허용해야 한다.
스쿨존이든 노인보호구역이든 각 기업이 본인들 책임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게 하면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완전자율주행을, 기술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특정 지역에서 수동 운전으로 전환해 운행할 것이다. 운행 실적을 공개하도록 해서 기술력 향상을 위한 경쟁을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또한 국내에 자원이 제한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자율주행 관련 모든 분야를 국산화하는 것보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해 생태계 건전성을 개선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완전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이 소홀하게 대처하는 동안 기술 강대국들은 한국을 훨씬 앞서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운영체제나 검색엔진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의 특성상 일등 기술이 세계를 제패한 선례를 간과하면 10년 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자율주행 기술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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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