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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2에 바람: ‘메신저’ 미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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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의 최종회가 공개된 지 한 달여가 되었지만 그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흑백요리사의 가장 큰 기여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Fine Dining Restaurant)에 대한 ‘납득하기 어려운 비싼 가격의 음식을 파는 곳’이라는 막연한 오해를 풀었다는 점이다. 파인 다이닝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예술품의 가치를 물감과 캔버스의 가격, 그리고 노임의 단순한 합(合) 정도로 보는 어리석은 인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위대한 셰프·위대한 생산자 만나
음식으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도
동물복지 인식 확산도 그중 하나
식재료에 담긴 철학 구현해보길

흑백요리사에서는 파인 다이닝 셰프들의 천재적 창의성과 정교한 조리 테크닉,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도가 흥미롭게 콘텐트화되었다. ‘밈(meme)’이 되어버린 안성재 셰프가 언급한 ‘적절한 익힘의 정도’라는 표현은 단순하고 모호하게 들리지만, 테크니션으로서의 종합 평가 기준이다. 식재료의 특성, 가열 및 조리 도구의 특성, 시간, 온도, 수분, 유분, 염도, 농도 등의 변수 간의 복잡한 함수 관계를 조리 중 재빠르게 암산하면서 동시에 적확한 조리 테크닉을 투입해야 ‘적절하고도 이븐(even)한 익힘의 정도’가 된다.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과연 평가자인 안성재 셰프는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안성재

안성재

안성재 셰프가 ‘모수’를 서울에 이전 오픈했을 때 호기심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2018년이었고,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후 모수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된 후 다시 모수를 찾았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잊지 않기 위해 SNS에 이런 기록을 남겼었다.

“전 세계 최고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보면 셰프의 명확하고 강렬한 컨셉이 있다. 로컬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여주거나, 식재료를 해체해서 재조합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특정 식재료를 정해서 그 식재료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거나, 지속가능성의 철학을 음식에 담아내는 곳 등이 있다. 모수도 나름의 명확한 방향이 있다. 모수는 고객이 음식을 먹을 때 경험하게 될 오감의 자극 레이어(layer)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식당이다. 음식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소비재 중에서 유일하게 오감을 쓰는 소비재다. 미각, 후각, 식감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촉각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는 시각적 형태, 먹기 전, 혹은 씹을 때의 청각적 자극까지 오감을 다 사용하는 소비재다. 모수는 이 중에서도 특히 맛과 향의 자극 설계에서 전 세계 최고임이 분명하다.

모수의 음식은 입 안에 넣으면 놀라운 맛과 향이 순차적으로 변하며 긴 여운의 자극을 만들어 낸다. 모든 음식이 입 안에 넣기 전부터 다 사라질 때까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단순한 맛과 향의 음식이 단 하나도 없고, 복합적인 맛과 향의 레이어를 갖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체 코스가 다채로운 맛과 향의 향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천재 조향사가 만든 코스 같다.”

셰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으나 안 셰프는 자리에 없었다.

흑백요리사에서는 파인 다이닝 셰프의 다양한 역할과 역량을 보여줬는데,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었다. 생산자가 식재료에 담고자 하는 철학과 의도를 음식으로 멋지게 잘 구현하여 셰프의 목소리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과 역량이 그것이다. 위대한 셰프와 위대한 생산자가 만나서 음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예컨대 미국의 댄 바버(Dan Barber) 셰프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농부 에두아르도 소사(Eduardo Sousa)씨의 협업을 통해 강제 급이(給餌·먹이를 줌) 방식의 푸아그라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고, 동물복지 고기 사용에 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산한 푸아그라는 강제 급이 방식의 푸아그라보다 더 단단하고, 조리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풍미도 차이가 난다. 본질적으로 다른 식재료다.

또 프랑스의 고(故) 폴 보퀴즈(Paul Bocuse) 셰프는 브레스(Bresse) 지역의 토종닭 생산자들과 협업을 했고, 평생 그들의 메신저가 되었다. 지역의 농산물만 먹이고 방목 사육하며, 천천히 오래 기르는 브레스 토종닭의 특성에 대해서 연구했고, 그 특성에 따른 조리법을 개발하여 브레스 토종닭의 품질이 돋보이는 요리를 선보이며 전 세계에 소개했다. 그로 인해 브레스 토종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급 식재료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서는 흑백요리사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는 셰프의 다양한 역할과 역량을 평가함에 있어, 생산자의 철학과 의도가 담긴 특별한 식재료를 그 의도에 맞게 요리로 잘 표현해내는, 생산자와 연대할 수 있는 셰프의 역량, 메신저로서의 역량을 볼 수 있는 미션도 나오면 좋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본질적으로 생산자가 생산한 농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