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명태균씨의 얽히고설킨 국정농단 의혹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9일 원내대책회의 발언)
“윤석열 대선캠프의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 혐의를 신속하게 규명해야 한다.”(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28일 기자회견)
불법 여론조사와 공천 개입 등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를 둘러싼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권에선 연일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혐의 등을 거론하며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논란이 커지고 의혹이 불어난다고 해서 곧장 수사 대상이 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사가 이뤄진다 해도 법리상 넘어야 할 허들이 꽤 높다”(재경지검 검찰 간부)는 반응이 나온다.
‘명태균 의혹’ 제보자인 강혜경씨(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회계책임자)는 명씨가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을 원하는 예비후보자들로부터 총 2억여원을 수수한 뒤 이를 윤 대통령 맞춤형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여론조사는 81회에 걸쳐 실시됐고, 이 중 23회의 미공표 여론조사 일부는 표본과 결괏값 등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 캠프가 이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의원을 공천했다는 게 명태균 의혹의 핵심 내용이다.
① 공직선거법 위반인가
이같은 의혹은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지만, 선거법의 공소시효는 6개월로 명씨의 시효는 이미 만료된 상태다. 다만 명씨와 달리 대통령의 공소시효는 남아있다. 대통령은 임기 중 불소추특권이 적용되는 만큼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공소시효가 약 4개월 남았고, 임기를 마치는 2027년 5월부터 다시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불법 여론조사 의혹과 별개로 대통령 부부에게 제기된 공직선거법상의 또 다른 의혹은 ‘공천 개입’이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예외적으로 공소시효 10년을 인정하는 조항 역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이 직무 또는 지위를 이용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경우”다. 결국 행위 당시의 신분이 ‘공무원’인지가 관건이다.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선 여론조사를 받아본 시기는 대통령이 되기 전 후보 시절”이라며 “당시 신분이 공무원이 아니라서 의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공무원 신분인 김건희 여사의 경우 적용이 더 어렵다고 한다. 앞서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엔 대통령 배우자와 관련한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서 청탁금지법상 배우자 처벌조항이 없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② 정치자금법 위반인가
명씨가 81회에 걸쳐 실시·의뢰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 비용은 3억7520만원 규모다. 정치자금법은 지정된 후원회·후원금·기탁금 등을 제외한 방법으로 오간 정치자금을 불법 기부행위로 규정한다.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입당한 정치인으로 정치자금법 적용 대상이다. 명씨가 후보 본인이나 캠프와의 교감 하에 여론조사 결과를 주기적으로 전달했다면 불법 기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짜 여론조사=불법 정치자금’이라는 논리다.
실제 캠프에서도 “대선 당일까지 미래한국연구소 보고서를 선거 전략 회의에 참고했다(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는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의 증언 등 미공표 여론조사 결과가 사용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고의성 입증이다. 수도권 차장검사는 “후보 본인(윤석열)이 여론조사 ‘비용’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인식했어야 한다”며 “그런 구체적 인식을 입증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쟁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명씨와 비용 처리를 상의한 캠프 관계자면 몰라도 (대통령 부부 등) 윗선이 비용까지 개입했는지 추가로 밝혀져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짚었다.
③ 뇌물죄인가
야권은 윤 대통령에게 뇌물죄가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여론조사 비용 대신 제3자(김영선) 공천이라는 대가를 받은 제3자 뇌물 구도(이해식 민주당 의원,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수뢰 후 부정처사 형태의 뇌물죄(28~29일 박은정·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등의 주장이다. 진보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달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제3자 뇌물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무원 범죄’인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까다롭다. ‘공무원 직무에 대한 청탁’과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뇌물 수사 경험이 많은 고위 검사는 “제3자 뇌물도, 수뢰 후 부정처사도 전제부터 걸리는 부분이 있다”며 “공천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나 직무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수도권 부장검사 역시 “당시 후보자 신분이 공무원이 아닌 데다 ‘공무원이 될 자’에게 적용되는 사전수뢰죄 역시 담당할 직무에 관한 청탁이 요건이라 혐의 적용이 어려워 보인다”고 해석했다.
④ 알선수재인가
그렇다면 ‘브로커 범죄’로 불리는 알선수재는 윤 대통령에게 해당할 수 있을까. 알선수재는 금품을 받고 공무원 직무에 속하는 사항을 공무원에게 알선한 경우 적용된다. 윤 대통령의 경우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받고 소위 ‘브로커’ 역할을 해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 등에게 김 전 의원 공천을 요청한 상황을 전제로 알선수재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렵다는 게 법조계 견해다. 앞서 대통령의 공천권 부재를 지적한 고위 검사는 “당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은 모두 원외 신분 비공무원”이라며 “공무원 직무에 대한 청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