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초 짧은 절정, 가을 단풍 숨은 명소
제가요? 언제요? 장난치다 들킨 뒤 발뺌하는 악동처럼, 날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가을의 깊이만큼 여름의 초록을 버린 나무들은 비 온 뒤 더 파래진 하늘 앞에 다시 섰다.
강천산(584m).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강천산은 자연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요. 단풍도 내장산과 선운산 못지않고요. 무엇보다 호젓합니다.” 군산에서 한 달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는 이성택(65)씨의 말이다. 전북 순창 강천산은 100대 명산에 이미 이름을 올렸지만, 단풍 명산의 숨은 강자다. 내장산과 선운산의 숨 가쁜 인산인해에서 벗어나 긴 숨 쉴 수 있는 곳이다.
“방 없어요, 11월 셋째주까지 예약 꽉 차”
설악산은 이미 지난 20일을 전후로 단풍 절정이 지났다. 순창군이 꼽는 강천산 단풍 절정은 11월 5일 전후다. 예년보다 닷새 정도 늦다. 단풍 절정은 산림 80% 이상이 물들었을 때를 가리키는데, 아차 싶다가 놓친다. 단풍 시즌은 짧다. 화려함의 피크를 보고 돌아서면 사라진다. 절정 아닌 절망이 될 수 있다. 비가 그치자 바람이 차가워졌다. 찬 기온은 강천산 단풍이 익어가는 속도를 올렸다.
“어휴, 방이 없어요. 벌써 한 달 전에 다음 달 중순까지 예약이 꽉 찼지요. 다 강천산 가자는 사람들이죠.”
지난 23일. 순창고추장 기능보유자인 김기순(46)씨는 산더미같이 쌓아올린 더덕과 고추장을 와락 안고 버무리던 중이었다. 씁쓸하고도 달곰한 더덕과 구수하고도 감치는 고추장이 한 몸이 됐다. 입안에 침이 스프레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김씨가 눈치챘나. 더덕장아찌를 내줬다. 음!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김씨는 “더덕이 강원도에서 방금 왔어요. 순창고추장의 비결 중 하나인 물은 또 다른 순창 특산품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알아주지요”라며 물 한잔 건네줬다. 순창의 물은 맑기로 유명하다. ‘순창 강천 음용수’는 전국에 소문난 물이다. 2년 전 ‘수(water) 체험센터’까지 열었다. 김씨가 “군에서 지독하게도 관리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강천산 나무들이 이런 물을 흠뻑 마신다. 설동찬(78) 문화관광해설사는 “물이 하도 맑아 되레 물고기들이 못 살 정도”라며 “단풍 빛깔이 유난히 좋은 건 나무가 평소에 이렇게 좋은 물을 잘 먹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추장 만드는 또 다른 비결인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는 고운 단풍을 만드는 비결이기도 하다.
강천산의 단풍은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아기 손처럼 작고 앙증맞아서 붙은 이름이다. 애기단풍이 홍조를 띠었다. 하루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질 때 단풍나무의 엽록소 파괴 속도가 활발해지는데, 이때 나오는 ‘안토시아닌’이란 물질이 붉은빛을 끌어올린다.
사람들은 애기단풍을 머리 위에, 혹은 어깨 옆에 두고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신발은 산 입구에 놔두고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꽤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서 온 김모(58)씨가 “건강에 좋다고 하잖아요. 발에 걸리적거릴 것도 없이 관리를 잘해 놔서 맨발의 청춘이 되려고요”라고 말하자 함께 온 친구들도 양말을 벗기 시작했다. 1964년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을 알 정도면 몸의 청춘은 물 건너갔겠지만, 마음의 청춘이라도 찾자는 부산스러움이었을 게다.
깃대봉 능선으로 향하면서 이 ‘청춘들’과 멀어져야 했다. 5분 만에 강천산 깊은 계곡을 떠다니던 말소리가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들렸다. 제주에서 왔다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산행 1시간 만이었다. “와! 사람이다”라며 인사를 먼저 건넨 건 제주 사람들이었다. 비행기 타러 가야 한다는 그들의 걸음이 굉장히 빨랐다. 강천산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온다. 밥만 먹고 가는 사람. 여기에 입장료 5000원을 내고 계곡 산책길까지 걷는 사람. 앞서 두 가지를 더해 산행도 하는 사람.
강천산에는 강천산만 있는 게 아니다. 강천산(왕자봉)-산성산(603m)-광덕산(578m)-옥호봉(415m), 산행은 이렇게 말발굽 형태로 이어진다. 이 산들을 한 묶음으로 강천산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이 종주 코스는 8시간 정도 걸린다.
애기단풍 1980년대부터 2.5㎞ 걸쳐 심어
이성택씨를 금성산성 앞에서 만났다. 금성산성은 강천산과 엉겁결에 한통속이 되고 만 산성산에 있다. ‘위험’ 간판을 세울 정도로 가파른 사면과 곳곳의 험악한 바위는 산성을 만들기 최적의 입지다.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성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이다. 임진왜란 의병과 동학농민군, 그리고 빨치산의 거점이었다. 강항(1567~1618)이 정유재란 때 포로가 돼 끌려간 일본에서 조선에 몰래 글을 보냈다. 그는『적중견문록』에 ‘왜군들이 호남지방의 성들을 둘러보고 “이게 성이냐”고 비웃다가 금성산성을 보고 나서는 “조선사람들이 한사코 지켜냈더라면 우리가 해낼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순창과 전남 담양에 걸친 금성산성은 담양군이 관리한다. 산성 남문을 통해 강천산으로 넘어오는 등산객도 많다.
금성산성 급경사에서 구르듯 내려왔다. 많은 산이 그렇듯, 강천산도 절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강천사가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창건됐다고 하니, 산 이름도 꽤 됐을 테다. 강천산은 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에 올랐다. 이미 그 1년 전에 높이 50m 현수교를 세웠다. 애기단풍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심었다는 게 설동찬 해설사의 말이다. 2.5㎞ 계곡 따라 1만 그루란다. 여기에 물을 끌어다가 만든 40m 병풍폭포와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120m 구장군폭포는 압권이다. 강천산 앞 메타세쿼이아 길에 다다르면 차를 세워 사진을 찍는 민폐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3.6㎞에 360여 그루가 하늘 향해 뻗어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순창농고(현 순창제일고) 학생들이 심었다고도 하고, 담양 88도로를 만들면서 그곳의 나무들을 옮겨와 심었다는 설이 있다.
강천제2저수지 아래. 계곡에는 수많은 초록과 노랑·빨강이 신호등처럼 걸려있었다. 채 익지 못해 아직도 초록인 것들과 이미 노랑과 빨강으로 변한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단풍이 아름다운 건, 다른 색과의 이런 공존에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이 애기단풍 그림자에 기대 단풍처럼 화사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며칠 뒤 고추장보다, 현수교 색깔보다 더 붉어질 애기단풍이 소리 없이 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