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까지 11시간,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날아갔다. 지난해 초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 피해 지역, 가지안테프다. 이튿날 아침, 자동차로 2시간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 진디레스(Jindires)다. 시리아 난민의 유럽 진입을 막기 위해 튀르키예-시리아가 설정한 일종의 비무장지대다. 치안은 튀르키예가 담당하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긴장감은 여전했다. 튀르키예의 중무장 장갑차와 소총으로 무장한 시리아 시민방위군의 모습도 여기저기 보였다. 그속에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지진의 상처가 곳곳에 있었다. 법륜 스님(한국JTS 이사장)은 국제구호기구 JTS와 함께 9일 이곳을 찾았다.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이 지역에 내일의 희망을 심기 위해서였다.
◇무너진 학교, 지진의 상처=지난해 2월 규모 7.8의 강진이 진디레스를 강타했다. 땅이 꺼지고 집들이 무너져 내렸다. 학교 건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 학교에서는 교사 9명과 학생 124명이 지진으로 인해 사망했다. 살아남은 학생들도 상처는 컸다. 졸지에 친구를 잃고, 공부할 곳도 잃었다. 지금도 진디레스 곳곳에는 허름한 막사형 텐트가 보였다. 살 곳을 잃은 이들이 사는 거처였다.
◇새로운 학교, 내일의 희망= 9일 이곳에서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 학교 준공식이 열렸다. 지역 사람들이 다들 모인 마을 축제 분위기였다. JTS가 이곳에 무려 4000명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학교를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초등 및 중등학교다. 학교 건물은 모두 112칸이고, 교실만 52칸이다. 과학실과 컴퓨터실, 도서실까지 두루 갖춘 깔끔한 학교였다. 학생들은 2부제로 나누어서 수업을 듣는다. 칠판과 책걸상, 컴퓨터 등 학교 기자재는 물론이고 교복과 신발, 가방과 학용품까지 모두 지원했다.
법륜 스님과 JTS(한국ㆍ미국ㆍ필리핀) 대표부가 교실로 들어섰다. 학생들은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반겼다. 여학생 호자 마라카트(13)는 “지진 후에 텐트에서 공부해야 했다. 너무 덥고,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며 “이젠 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시리아 북부는 사막 기후라 더우면 40℃를 훌쩍 넘고, 추울 때는 1~2℃까지 떨어진다. 말핀 무스타프 액티얼(13)은 “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지진과 내전으로 인한 우리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다”며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는 교사 하이삼 하이달(36ㆍ남)은 “텐트에서 공부할 때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니는 학생이 많았다. 이들을 그냥 두고 어떻게 외국으로 나갈 수 있겠느냐”며 “정말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언젠가 우리가 이 고마움을 되갚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생력 키우는 도움의 손=JTS는 이 학교를 짓는 데 150만 달러(약 20억 원)를 지원했다. 그냥 학교만 지어주는 식이 아니었다. JTS는 자금과 기술자를 대고, 시리아 현지의 긴급구조 NGO인 화이트 헬멧이 직접 중장비와 노동력을 대며 공사를 맡게 했다. 민간단체인 화이트 헬멧은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수차례 오른 바 있다.
법륜 스님은 “그렇게 해야만 이곳 사람들이 남이 지어준 남의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며 “그래야만 준공 이후에도 자체적인 유지ㆍ보수가 가능해진다”고 지원 방식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JTS필리핀은 지난 20여년간 이런 방식으로 필리핀 오지에 무려 70개의 학교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JTS가 터득한 교훈이자 노하우다.
이날 준공식에는 시리아 임시 정부 수반과 각 부 장관들, 튀르키예 주지사들도 참석했다. 튀르키예의 오르한 악투르크 주지사는 “이런 부족한 자원과 열악한 환경에서 9개월 만에 이토록 멋진 학교를 지었다는 게 너무 놀랍다”며 “시리아 북서부를 통틀어 가장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실제 준공식 이후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 학교의 건물과 내부 사진들이 SNS를 통해 순식간에 시리아 전역에 퍼졌다. “지진과 공습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인데 좋은 학교가 생겨 부럽다”는 댓글이 많았다. 시리아TV와 알자리라 방송국 등 현지 언론들도 준공식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내전으로 문맹률 높아져=시리아는 내전으로 학교 교육 시스템이 많이 붕괴됐다. JTS한국 박지나 대표는 “교육을 받을 적령기에 학교 접근이 안 되는 아이들이 무려 60만 명”이라며 “10년 넘게 진행 중인 내전으로 발생한 문맹자들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진디레스 남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텐트촌이 있다. 내전을 피해 피난 온 300만 명의 난민이 이곳에 살고 있다.
법륜 스님은 “학교가 없는 곳이 많다. 난민촌도 그렇다. 오늘 준공한 학교의 수업을 동영상으로 각지에 송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럼 텐트만 하나 지어도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사가 없더라도 출석 등을 관리할 담당자 한 명만 있으면 된다”며 “그럼 이른 시일 안에 문맹률을 낮출 수 있다. 인터넷 지원이 가능한지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와 튀르키예 정부 측에도 문의해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말 끝에 법륜 스님은 “부서진 건물이 새로 지어지는 것처럼 시리아 어린이들과 국민이 다시 일어서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교육이 없다면 진정한 평화도 없다”고 강조했다.
◇JTS(Join Together Society)=법륜 스님이 설립한 국제 기아ㆍ질병ㆍ문맹 퇴치 활동을 하는 국제구호기구다. 한국ㆍ인도ㆍ필리핀ㆍ미국에 JT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