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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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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허정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정원 사회부 기자

허정원 사회부 기자

‘요즘에는 별별별, 이런저런 별별별’

걸그룹 엔믹스의 노래 ‘별별별’의 후렴구다. 뭐가 별스러운지 그 목적어는 생략됐지만 ‘모두 우릴 보고 혀를 차겠지’라는 앞선 가사에서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별별 억지 비판을 의식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이 노래가 유독 뇌리에 맴도는 건 유명인에게 가해지는 ‘억까’와 ‘나락’이 난무하는 세태 탓이다. 억까는 논리적·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자의적 이유로 대상을 비판한다는 의미로 ‘억지로 깐다’의 줄임 말이다. 나락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 민심이 땅에 떨어졌다는 의미로 ‘나락갔다’는 용법으로 주로 쓰인다.

2019년 10월 14일 숨진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는 JTBC 예능에 출연해 악플과 관련한 힘든 심정을 털어놨다. [사진 JTBC]

2019년 10월 14일 숨진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는 JTBC 예능에 출연해 악플과 관련한 힘든 심정을 털어놨다. [사진 JTBC]

나락을 갔다면 유명인이 자기 귀책 때문에 스스로 나락으로 향했다는 뜻일 텐데, 막상 알고 보면 일부 대중들이 한 사람을 나락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중인 경우가 다반사다. 하이브 경영권 탈취 논란 도중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개저씨” 공격을 가한 이후 튄 불똥이 대표적이다.

이 파편은 엉뚱하게도 하이브 소속 아이돌 아일릿과 르세라핌이 맞았는데, 방 의장 측이 데뷔시켰다는 이유로 ‘개저씨 취향’이란 프레임이 씌워지고 체형·외모 비하 등 갖은 성희롱과 모욕의 대상이 됐다. 이는 두 그룹에 이전부터 있었던 가창력 논란에도 기름을 부었는데, 단순한 실력 비판 치고는 공격의 강도가 세고 집요해서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한번 제기된 논란을 잊히게 두지 않고 계속 다시 꺼내 괴롭히는 ‘도돌이표’ 유형의 억까도 있다. 지난해 1월 뉴진스의 멤버 민지는 유튜브 방송 도중 “칼국수가 뭐지?”라고 혼잣말을 했다가 1년 넘게 조롱을 당해야 했는데, 일부 언론조차 ‘칼같이 국제선 출국 수행’ 등 칼국수 삼행시가 연상되는 기사 제목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칼국수 모름죄’를 범한 민지는 결국 사과문을 올렸다.

이 외에 딸기를 두 손으로 먹었다고 논란이 된 가수 장원영, 한때 학교폭력 의혹을 받았다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난 가수 이나은에게 “내가 널 오해했었다”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가 졸지에 학폭 두둔자가 된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까지 논란의 내용은 그야말로 별별별스럽다.

세밀하고도 쉴 새 없이 가해지는 대중의 공격에 연예인들의 입에서 “계속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하는 것도, 멈추는 것도 무섭다”는 호소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능력 없으면 그만둬라’ ‘대중 상대로 기 싸움 말라’는 무자비로 다시 돌아온다.

한번 밉보인 이들에 대한 혐오는 누그러들지 않는데, 기억해야 할 일은 빨리도 휘발된다. 5년 전 오늘은 걸그룹 f(x)의 멤버 설리(본명 최진리)가 세상을 등진 날이다. 설리법을 제정해 인터넷을 실명으로 이용하게 하자는 분노들은 희미해졌는데, 그날에도 과하다 했던 공인의 유명세(稅)만 더 비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