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종 넘는 첨가물, 과연 먹거리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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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호 22면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
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
김성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잔탄검, 구아검, 유화제, 글리세린…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대부분에 들어 있는 식품첨가물 리스트다. 이런 성분들은 아이스크림이 따듯한 온도에서 빨리 녹지 않고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물을 가까이 붙잡아 두어 얼음 결정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더 선호하는 부드러운 크림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비법이다. 유통 과정에서 아이스크림을 장거리 운송할 수 있게 해 주고 아주 낮은 온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식품에 들어가는 재료를 줄일수록 만들기도 간단하고 비용도 더 저렴해진다. 그런데도 식품제조회사들이 굳이 이렇게 낯선 첨가물들을 넣는 이유는 예상과는 달리 원가 절감과 맛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미즈 몰리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첨가물인 팜스테아린, 팜핵유, 환원유, 유화제 등은 우유, 크림, 계란같이 현실의 값비싼 재료들을 흉내 내고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더 절감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식품첨가물은 많게는 1만 종이 넘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스크림 같은 초가공식품은 기름, 단백질, 전분 등으로 분해된 식품성분을 정제, 표백, 탈취, 수소화, 에스테르 교환, 가수분해 등을 통해 추가로 변성한 것에 이런 식품첨가물을 결합해 만든다. 일부 비가공 자연식품, 저단계 가공식품을 제외하고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제품 중 첨가제가 든 초가공식품이 아닌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감염병 전문의사이자 의학 전문 방송인인 크리스 반 툴레켄은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해부해 담대하게 고발했다. 그가 지은 이 책의 영문판은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은이는 초가공식품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BBC방송의 식생활실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식품업계는 그들과 가까운 전문학자들을 총동원해 툴레켄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초가공식품을 둘러싼 논쟁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관건은 암, 당뇨, 비만, 심혈관질환 등 건강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초가공식품이 우리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문제 제기에 성공한 이 책은 한국에서도 식생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당국자는 물론 식품업계, 학계,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음식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 물질’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초가공식품의 위험 가능성을 직접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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