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
메리 비어드 지음
이재황 옮김
어느 날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아는 퇴역 군인이 벽에 등을 문지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고 있냐고 황제가 묻자 그는 “등을 밀어줄 노예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제는 그에게 노예 몇 명을 주고, 노예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도 주었다. 나중에 다시 공중목욕탕에 가자 노인들이 죄다 벽에 등을 문지르고 있었다. 황제는 이번엔 그들에게 서로 등을 밀어주라고 말했다.
훗날 4세기쯤에 기록된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 일화는 사람들이 로마 황제에게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황제는 관대해야 하지만 적절한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인민의 욕심을 보고 역정을 내기보다는 재치 있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전장에서 함께한 동료를 기억해야 하고, 공중목욕탕을 찾는 등 인민들에게 동질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 책의 지은이 메리 비어드는 “만나기 쉬운 황제”가 정권 홍보가 아닌 현실로 존재했을지 회의적이다.
메리 비어드(1955~)는 케임브리지대의 저명한 고전학자이다. TV 출연을 통해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인이기도 하며, 영국식 유머로 가득한 개인 블로그에는 매일 전 세계에서 4만 명 이상이 접속한다. 로마 시대를 다룬 그녀의 책들은 대체로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학계 동료들은 비어드가 고전학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지루한 것에서 흥미진진한 것으로 180도 바꿔 놓았다고 놀라워한다. 국내에도 번역된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대가라고 불리는 학자가 대중 독자에게 그처럼 성공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주제든 재치 있게 그러나 과장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드문 능력이다.
『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는 비어드의 최신작으로, 로마 황제로 산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이었나를 열 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역사 강의, 또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 열 가지는 독재, 후계, 식사, 거처, 궁정인들, 업무 시간, 여가, 해외여행, 조각상, 죽음이다. 비어드는 로마 통사에 해당되는 책은 과거에 이미 썼다(『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이번에는 연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황제라는 기이한 배역(여러 황제들이 스스로를 배우로 느꼈다)의 실상을 다각도로 접근한다. 로마사에 지식이 없더라도 겁낼 필요는 없다. 의미심장한 일화를 소개한 뒤 “무슨 생각이 드나요?”라고 유도하는 느낌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어디서 들은 상식이나 영화에서 본 이미지들이 근거가 없거나 오직 제한된 의미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인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할지 모른다.
“이 책에는 예상보다 적은 수의 미치광이가 등장한다.” 비어드는 누가 성군이고 누가 폭군인가라는, 우리가 중시하는 구분에 무관심하다. 황제들마다 유능함과 선량함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중요한 것은 그 평가가 전적으로 후임자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임 황제가 암살로 제거된 경우(그런 일이 많았다) 신임 황제는 전임자를 광인이자 절대악으로 선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런 선전을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당대 로마인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이런 체제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플리니우스가 전하는 다음의 일화가 말해 준다.
황제 네르바가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전임 황제의 하수인으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았던 집정관 메살리누스가 화제에 올랐다. 좌중이 그에 대한 험담에 열을 올리는 동안 네르바가 물었다.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소?” 한 손님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우리와 함께 밥 먹고 있겠죠.”
김영준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