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때 어느 날 밤길을 가다가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검진증을 요구했는데 없다고 하자 차에 태웠고 다른 언니들도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도착한 곳은 산속 성병관리소였습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에 반대하는 동두천평화문화제’가 열린 1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주차장. 얼굴을 가린 채 연단에 선 여성 A씨는 이 같은 과거 기억을 털어놨다. 시민단체인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등에 따르면 1970~80년대 미군기지 인근 클럽에 등록된 기지촌 여성은 성병 검진을 일주일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받았는데, 불시 검문 때 이를 증명하는 검진증이 없으면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다.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던 A씨는 성병관리소를 ‘몽키 하우스’라고 불렀다. 여기엔 수용된 여성들이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신세 같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A씨는 “다음날 산부인과 검진 결과 성병에 안 걸렸는데도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 기절할 정도로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나 걷지 못할 지경인데도 일주일 동안 원숭이처럼 갇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병관리소 철거는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로 가둬놓고 감시하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저 건물을 바라볼 때 가슴 저리게 아프지만, 후대를 위해 남겨 그것을 보여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문화제는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등 64개 시민단체로 꾸려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주최했다. 문화제에선 공연과 발언, 평화의 꽃 달기 퍼포먼스 등이 이어졌다.
서울 광화문 등에서 ‘평화 버스’를 타고 온 이들을 포함해 약 200명이 이날 문화제에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옛 성병관리소를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역사문화·평화공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라며 “개발사업을 위해 서둘러 역사유산을 철거하면 복원할 수 없는 역사 환경 파괴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6·25 전쟁 뒤 미군 상대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자 73년 당시 정부가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병 관리를 위해 소요산 입구에 설치했고 96년 폐쇄됐다. 전 세계에서 하나 남은 성병관리소 건물이지만 28년째 방치돼있다.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2월 성병관리소 건물과 땅을 사들였다. 이달 중 업체를 선정해 철거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두고 인근 상인·주민이나 공대위 등 시민단체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소요산 관광지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지역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성병관리소가 오래도록 버려져 있어 건물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지역에서는 흉물로 인식됐다고 한다.
반면 공대위는 성병관리소가 아픈 역사 현장인 만큼 이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거 저지에 나선 공대위는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