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1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국경을 넘어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지상전에 돌입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를 “제한적 작전”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면전의 전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1년 가까이 이어진 가자지구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소탕에 상당한 성과를 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친이란 세력을 무력화해 역내 질서를 다시 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블루라인 넘은 이軍…"레바논 북부 이동 중"
로이터통신과 알자지라·CNN·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50분 이스라엘군(IDF)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IDF가 레바논 남부에 대한 지상 침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IDF는 이번 작전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헤즈볼라 테러리스트의 목표물만을 겨냥한 국지적이고 제한적이며 표적화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IDF는 이날 레바논 남부 접경 마을 25곳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렸다. "헤즈볼라가 군사적 필요를 위해 사용하는 모든 주택이 표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전을 위해 즉시 대피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국경을 넘어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벌인 건 지난 2006년 이후 18년 만이다. 당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하자 이스라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설정한 경계선인 '블루라인'(Blue Line)을 넘어 레바논에 병력을 투입했다. 34일 간 이어진 전쟁에서 레바논 측에선 1200여명, 이스라엘 측에선 민간인을 포함해 170명이 사망했다.
IDF가 이번에 밝힌 목표물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침투를 위해 만들어 놓은 땅굴과 지하 무기고, 미사일 발사대로 추정된다. IDF는 “목표물이 국경에 가까운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수부대로 구성된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과의 국경을 넘자 공군과 본토의 포병대가 일제히 지원에 나섰다.
레바논 국경 도시 주민들은 1일 자정 직후 엄청난 연쇄 폭발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남부 도시인 아이타 알-샤브 하늘에서 커다란 포격 소리와 함께 전투 헬기, 무인기(드론) 소리가 울렸고, 또다른 국경도시인 르메이시 상공에선 반복적으로 섬광이 터졌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큰 폭발음이 수차례 이어진 뒤 거대한 불길과 연기 구름이 올라왔다.
헤즈볼라는 이날 자정 레바논 국경에 위치한 아다이시트·크파르겔라 등 마을에서 IDF가 국경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지상 작전 개시 직후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 북부로 최소 10개의 발사체와 드론을 쐈지만 대부분 요격됐다고 이스라엘 측은 밝혔다. 다만 IDF 대변인은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지상군과 헤즈볼라 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고, 헤즈볼라는 국경 도시인 메툴라 근방에서 이스라엘군을 포격했다고 주장했다.
민간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전날 오전 X(옛 트위터)를 통해, 레바논을 떠나 시리아로 넘어간 난민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는 1일 “지난 24시간 동안 이스라엘 공격으로 95명이 죽고 17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다만, 헤즈볼라는 대변인 모하메드 아피프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영토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이스라엘군과 지상에서 직접 충돌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팔레스타인 난민캠프도 공습, 이란 도발도
이날 IDF가 넘어선 레바논 남부 국경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무력 충돌과 포화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특히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세계 최강의 비정규군’으로 평가받는 헤즈볼라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지역이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뇌관이 될 수 있는 곳이란 점을 이스라엘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확전도 불사하겠다는 듯 친이란세력에 대한 동시다발적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는 레바논 남쪽 국경을 넘은 이스라엘 지상군이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IDF는 “기존 작전은 상황에 따라 계속될 것이며, 가자지구 등 다른 전선에서의 교전과 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3일 ‘북쪽의 화살’ 작전을 선포한 뒤 레바논 전역에 고강도 폭격을 퍼부어왔다.
IDF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 대한 공습도 감행했다. 시리아 국영 TV는 이날 오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TV 진행자를 포함해 3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남부 시돈 인근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중 하나인 아인엘 힐웨에 대한 공습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와 연계된 무장조직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의 레바논 지부 사령관인 무니르 마크다를 겨냥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도발도 이어갔다. 네타냐후리는 전날 TV를 통해 페르시아어 자막을 붙인 TV 영어 연설을 하며 “이란 정권이 무너지고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날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수 있고, 그날이 오면 유대와 페르시아 두 민족은 마침내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도 말했다.
"가자 1주년 맞아 안보 실패 만회, 성과 과시"
이런 이스라엘의 행보를 압도적 정보력과 군사력의 과시를 넘어 이를 기반으로 실제 역내 세력 구도를 재편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네타냐후는 지난달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수년 간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포화를 이란과 추종세력에 타격을 줄 기회로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에는 국내정치적 요인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오는 7일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공격, 8일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북부 포격 1년을 맞는 날이다. 네타냐후로서는 최악의 안보 실패를 어떻게 만회했는지 성과를 보여줄 시점이 된 셈이다. CNN은 하마스 공격을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치명적인 날이었다”고 표현하며 “당시만 해도 ‘미스터 안보’(Mister Security)였던 네타냐후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산산조각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1년 만에 반전을 이뤄냈다”고 분석했다.
한편,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도 이스라엘을 향한 반격을 가했다. 헤즈볼라는 이날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의 모사드 본부를 미사일 공격했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는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 군사정보부대인 8200부대와 모사드의 본부가 있는 텔아비브 외곽의 글릴로트 기지에 파디-4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 공격으로 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후티 반군은 같은 날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군사시설을 드론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앞서 텔아비브 인근 해안에서 수십 ㎞ 떨어진 곳에서 드론을 요격했다고 밝혔다.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날 언론에 "우리는 현재 헤즈볼라와 직접 싸우고 있진 않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헤즈볼라와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하면서도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로 진격하거나 레바논 남부에 남아있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앞으로 침공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질문에 "당신은 침공이라고 하고, 나는 공습이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그는 "확장된 공습"이라며 "우린 가능한 빨리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