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프롤로그〉 예전의 하늘과 땅과 바다가 아니다
」1화. 넥스트 팬데믹의 주범 박쥐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기후의 역습〉을 시작하며
기후의 반란이다. 대한민국이 열병을 앓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돌변했다. 예전에 알던 바람, 구름, 비, 눈, 더위, 추위가 아니다. 해마다, 계절마다 ‘최악’‘최대’ ‘최장’이 과거의 기록을 속속 갈아치우고 있다. 이변이 일상(日常)이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경험했듯,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다. 연근해는 아열대 어종에 점령당했다. 사과 등 온대성 토착 과일은 무더위를 피해 강원도로 달아났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후위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후변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절절하게 느낀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살인적 폭염, 물폭탄급 태풍, 대지를 태우는 가뭄, 꺼질 줄 모르는 산불 등 험악한 뉴스가 지구 곳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온다.
지구가 뭔가 탈 났다. 병세와 징후가 뚜렷하다. 주류 과학계의 진단을 압축해 본다.
·병명: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증세: 열병(기온 상승)
·원인: 화석연료 등 이산화탄소 배출 과다에 따른 온실가스 증가
·증상: 기상이변(폭염, 태풍,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빙하 붕괴 등), 생태계(동식물, 농작물·해양생물 등) 변화, ‘넥스트 팬데믹’ 출현 가능성
지구가 계속 달아오르면 어떻게 되나. 기후변화가 무엇이길래 야단법석을 피우나. 이런 상식적 의문을 품고 ‘기후의 역습’ 취재팀은 기후, 기상, 기후경제, 해양, 농업, 생태, 바이러스, 질병, 심리학 등 관련 분야의 국내 학자와 전문가를 찾아가 그들의 분석과 판단을 채취했다. 〈※기사 마지막에 있는 명단 참조〉
우리의 하늘과 바다와 땅을 답사했다. 취재팀이 목격한 기후변화의 흔적과 현실을 세상에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신종 전염병 바이러스의 숙주인 박쥐의 실태를 탐사했다. 해녀를 만나 바닷속 모습을 목격했다. 강원도 양구로 피란 간 사과 농부의 사연을 청취했다. 생생한 현장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기후변화의 실체를 추적한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기후변화를 얘기하면 곧잘 흥분하다가도 시큰둥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폭염은 겨울 앞에 멈추고, 폭우는 언젠간 그치고, 사과 대신 망고를 먹으면 그만이고, 북극곰 멸종은 남의 일이다 싶다.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절박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싱거운 사건이 아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농담이 진담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기후변화가 코로나19를 능가하는 ‘넥스트 팬데믹(Next Pandemic)’의 대유행을 몰고 올 수 있다. 그 태풍의 눈은 박쥐다. 기후변화와 박쥐의 관계를 ‘기후의 역습’ 시리즈의 출발점으로 잡은 이유다.
넥스트 팬데믹은 오나
박쥐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의 ‘원흉’이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코로나19의 원초적 병원체는 야생박쥐에 기생하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였다.
그뿐이 아니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2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출혈열도 야생박쥐의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 21세기 인류를 떨게 한 무시무시한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죄다 박쥐에서 기원했다.
박쥐가 또다시 넥스트 팬데믹의 주범으로 떠오른다. 기후변화 탓이다. 기온 상승이 박쥐의 삶에 영향을 끼쳐 그의 몸속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다양한 경로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박쥐는 기후변화와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의문의 연결고리를 풀어줄 열쇠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야생박쥐를 찾아나섰다.
2000마리 야생박쥐 사는 제주도 벌라릿굴
지난 9월 9일 오후 3시 서귀포시 성산읍 벌라릿굴(窟). 길이 670m의 용암동굴이다. 관박쥐, 긴가락박쥐, 큰발윗수염박쥐, 휜배윗수염박쥐 등 4종의 야생박쥐 2000~3000마리가 떼를 지어 서식한다.
‘일반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지나 성인 키 높이의 동굴에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동굴이 펼쳐졌다. 높이 5~10m, 너비 10m가량의 동굴 내부는 음습했다. 천장에서는 안전모를 쓴 머리 위로 액체 방울이 떨어지고, 용암석 바닥은 미끄럽고 울퉁불퉁했다. 이방인의 접근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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