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우리 또래는 대중문화에서 처음으로 어른들에게 반기를 든 세대가 아닐까 싶어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며 자신만의 뭔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니까요. 그런 물결 속에 일제 강점기, 보릿고개 같은 이야기를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X세대가 등장한 거죠.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게 90년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군사정권이 어어지고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브레이크댄스를 ‘저속무도행위’로 규정하고 대학로에서 추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이 지난 어느 날.
동네 춤꾼이던 난 구준엽 형 손에 이끌려 이태원 나이트클럽에 갔다. 해밀턴호텔 근처의 ‘문 나이트’라는 곳인데, 주로 미군들이 춤추러 왔다. AFKN에서 찾아 듣던 힙합과 미국 빌보드 탑10에 든 흑인 음악이 모조리 흘러나왔다. 나만 아는 줄 알았던 다양한 춤도 여럿이 추고 있었다. 그날부터 학교에선 졸고, 밤엔 춤추는 생활을 반복했다. 성인 나이트라 고등학생인 난 출입할 수 없었지만 웨이터 형들도 유일한 해방구인 것을 아니 몰래 들여보내 줬다.
흑인 미군들에게 춤을 배웠는데 ‘쇼다운’이라는 댄스 배틀이 매일 열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경쟁하며 실력을 키웠다. 주말엔 경품을 건 대회도 열렸는데, 3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흑인 형이 1등. 미군들 중엔 미국 래퍼와 친구인 사람도 있고 개성이 강하며 튀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과 교류하며 흑인 음악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문 나이트에 다니던 열의 아홉은 가수로 데뷔했다. 한마디로 스타 예약 창구였다. 클론 강원래·구준엽 형, 서태지와 아이들 양현석·이주노 형, R.ef, 노이즈, 터보, 룰라 등 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이 그곳 출신이다. 박진영 형도 가끔 구경하러 왔다. 그 시절 막내가 채리나. 리나는 춤도 잘 추고 싸움도 잘해 예뻐했다. 양현석 형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유명해졌는데도 매일 왔다. 몇 년 전 문 나이트 사장님이 돌아가셨는데 당시 가수들 몇몇이 상가에 모였었다.
시대탐구 1990년대 2화
🎤유학파 오렌지족이 반응하면 떴다
🎤임진모 “K팝은 90년대에 빚 졌다”
🎤“그때가 트렌디하다”는 1020 신기
※ 시대탐구 1990년대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90년대 신인류 K팝 만들다, ‘강남 흑인음악’ 듀스의 충격
난 거기서 현진영 형을 만나 백댄서를 맡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했다. 진영 형은 이수만 회장이 처음 기획한 가수. 발라드와 트로트가 대세였던 한국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걸 하고 싶어 했다. 1991년 부산의 한 야외무대에서 한창 공연 중이었는데, 갑자기 양복 입은 무리가 무대를 덮쳤다. 춤을 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진영 형이 무대 아래로 끌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