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대통령 됐어.
2002년 12월 20일 새벽 서울 명륜동 노무현 당선인의 자택. 전날 치른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노 당선인은 대선기획단장 문희상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마신 몇 잔의 축하주로 노무현은 제법 얼큰한 상태였다. 문희상이 당선인을 따라 안방에 들어가니 마침 형님 노건평이 와 있었다. 문희상의 회고다.
방에 들어간 당선인이 무턱대고 자기 형의 무릎을 베고 방바닥에 드러눕지 않겠어요. 그러고는 하는 말이 ‘형, 나 대통령 됐어’라는 거예요. 당시 가족 외에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습니다. 형, 건평씨는 ‘이러지 말라’며 내 눈치를 봤지만, 동생 노무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마치 어린애가 어리광을 부리듯 했어요. 평생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형에 대한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이었습니다.
권투선수 홍수환이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타이틀을 따고 나서 국제전화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고 문희상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가난한 집안의 똑똑한 막내
노무현에게 가족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는 1946년 경남 봉하마을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봉화산 자락에 자리한 수십 호의 작은 마을. 그나마 친척한테 사기당해 노무현이 태어났을 때는 이웃집에서 쌀을 빌어먹을 지경이었다.
학비를 조달할 돈이 없어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노무현은 혼자서 몰래 5급 공무원(지금의 9급)시험을 준비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열네 살 위의 큰형(노영현)이 펄펄 뛰는 바람에 부산상고로 진학하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노무현의 집안 사정은 그중에서도 몹시 어려운 편이었다.
봉하마을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자취, 가정교사, 빈 공장 숙직실을 전전하며 어렵사리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형편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사춘기의 노무현도 공부에 열중한 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졸업 후 그의 장래 희망은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안정적인 금융기관에 취직해 어려운 집안에 보탬이 되는 게 소망이었다. 그래서 농협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삼해공업이라는 어망회사에 들어갔지만, 하숙비도 안 되는 수습사원 봉급에 두 달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받은 월급으로 낡은 기타 하나와 중고 고시 책 몇 권을 사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