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하는 등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검찰이 징역 2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4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에게 내려진 첫 검찰 구형이다. 검찰이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인 허위사실공표죄에 2년 실형을 구형한 건 선거법 사건이 향후 대장동·백현동 비리 본 사건 재판과 직결된 만큼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이 사건 선고일을 11월 15일로 잡았다.
검찰은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판사 한성진) 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서 “이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거짓말해 사안이 중대하다. 선거 공정성과 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또 “발언 당시 대선 지지율이 박빙이었고 대선 표차가 0.73%포인트였던 점을 보면, 이 대표의 거짓말은 유권자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대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김문기 전 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한 혐의로 2022년 9월 불구속기소 됐다. 또 같은 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는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 변경 특혜 의혹에 대해 “국토교통부 압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취지로 허위 발언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 “李, 증거 없으면 모르쇠, 있으면 남 탓 패턴”
검찰은 구형에 앞서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띄워 조목조목 공소 사실을 주장했다. 먼저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을 두고는 이 대표가 시장 재임 때 김 전 처장과 호주·뉴질랜드 출장 가서 골프 쳤던 사진 등을 제시했다. 이어 김 전 처장이 당시 가족에 걸었던 영상 통화를 재생했다. “시장님하고 골프까지 쳤다. 너무 재밌었고 좋은 시간이었어”라고 하는 김 전 처장의 생전 영상이 법정에 공개됐다. 영상 종료 직후 이 대표는 잠시 눈을 감았다.
검찰은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만으로도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은 2009년부터 특별히 교유(交遊)한 사이”라며 “지난 대선 당시 대장동 의혹이 있을 때, 핵심 실무자이던 김 전 처장이 사망하자 이 대표는 김 전 처장과 관련성을 끊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아울러 “이 대표는 대통령 당선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본인 지시에 따라 정책을 수행한 김 전 처장을 끝내 모른척했다”며 노래 가사(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를 PPT 화면에 띄웠다. 검사는 이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라는 노랫말이 이 사건에서 이 대표의 입장과 같다"며 "당선을 위해 당연히 알지만 모르고 교유 행위는 기억 안 난다고 거짓말한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검찰은 “당시 이 대표는 대형 악재인 대장동 의혹에 더해 제2의 대장동이라 불린 백현동 의혹까지 대두해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며 “마치 부모에게 잘못을 걸린 아이처럼 비난의 화살을 돌릴 제3자가 필요했고 그 제3자가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고 주장했다. 또 “이 대표 변명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증거 없으면 모르쇠, 있으면 남 탓”이라며 “이 사건은 전형적으로 남 탓한 사례”라고도 덧붙였다.
기소 2년 만에 결심…李 “증거도 조작. 사필귀정할 것”
이번 결심 공판은 검찰이 2022년 9월 이 대표를 기소한 지 2년 만에 나왔다. 공직선거법상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1심 선고가 나야 하지만, 2년을 넘기게 됐다. 그동안 이 대표의 단식 투쟁과 흉기 피습, 재판장 사직 등으로 재판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공판 과정에선 “사후적으로 볼 때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친 건 팩트”라면서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또 백현동 사업 관련해선 “‘(국토부가) 나중에 직무유기 이런 걸로 문제 될 수 있다는 압박이 있으니 시장이 좀 해결해달라’는 공무원들의 하소연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검찰 구형 후 최후 진술에서 “제가 이 나라의 적이냐”며 “검사는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의 정적이라고 해서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감옥 보내고 결국 정치적으로 죽이고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는 게 맞느냐”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국가공권력을 남용해 특정인을 표적 삼아 없는 죄를 만들어 저로서도 사실 엄청 불안하다”며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객관적 실체에 따라 현명하게 판단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날 방청석 앞줄에선 박찬대 원내대표 등 민주당 친명계 의원들이 재판 장면을 지켜봤다. 지지자 약 100여명은 법정 밖에서 “이재명”을 연호했다.
벌금 100만원 이상 확정 때는 5년간 피선거권 박탈
공직선거법 1심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도 시험대에 올랐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확정받을 경우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도 상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받은 대선 보전금 434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다만 1심 선고까지 2년이 넘게 걸린 만큼, 차기 대선인 2027년 3월 이전까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 2·3심은 새로 증거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선 전에 대법원 판결까지 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도 “이 사건은 1심에만 2년이 소요돼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도 “사안이 단순해 대선 전 확정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통상 1심에서 유죄를 받은 경우 2·3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증인 신청 등을 적극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이 사건은 제1야당 대표의 피선거권이 달린 만큼 재판부가 더 신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오는 30일 위증교사 혐의 결심 공판도 앞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됐지만, 당시 법원이 “(혐의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 유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 사건이다. 이밖에 이 대표는 ▶대장동·백현동·성남FC·위례신도시 사건 ▶불법 대북송금 혐의 재판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