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더중플-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은 1995년 9월 ‘만철소재 선양지사장’이라는 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 선양에서 3년간 흑색 공작원으로 지냈습니다. 이어 2002~2017년 세 차례에 걸쳐 주중국 한국대사관에 무관보좌관·영사·육군 무관이란 외교관 신분의 백색으로 나가 대북 공작을 전개했습니다. ‘까마귀’에서 ‘백로’로 변신해 대북 첩보의 격전장이던 중국으로 활동한 그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30)입니다. 탐사팀은 ‘제1부-공화국 영웅 김동식의 인생유전’에 이어 ‘제2부-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으로 대북공작원의 세계를 들여다 봤습니다.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는 지혜롭고 지적인 독자들을 위해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지식 구독 서비스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식·정규필·수미 테리 관통하는 키워드, ‘공작’
‘수미 테리(Sue Mi Terry) 사건’은 첩보물을 뺨친다. 언뜻 보면,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에 포섭된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국의 실정법을 어겨 기소됐다는 평범한 뉴스에 불과하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흥미진진한 공작의 세계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국정원과 FBI(연방수사국), 핸들러(Handler)와 에이전트(Agent), 공작금과 명품 선물, 미행과 도청 등 공작 교본에 나옴 직한 극적 요소들이 총출동한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17일 수미 테리 사건에 관한 보도자료를 내고 31쪽의 공소장(indictment)을 첨부파일로 공개했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취재팀은 공소장을 면밀히 검토했다. 수미 테리 사건은 남파간첩 김동식씨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이하 존칭 생략)의 증언과 오버랩된다. 세 사람의 삶은 시대와 장소에서 다르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를 가로지르는 시차가 있다. 남북한·중국·미국이라는 무대도 상이하다. 그러나 김동식·정규필·수미 테리 세 사람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공작’이다.
공작원은 조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비합법적 비밀공작(covert-action)을 수행한다. 미국 검찰은 수미 테리를 국정원의 ‘에이전트(agent)’ ‘소스(source)’로 적시했다. 공작 용어로 에이전트는 공작원이며, 소스는 첩보를 제공해 주는 정보원을 지칭한다. 수미 테리와 만난 국정원 요원은 핸들러(handler)라고 지칭했다. 핸들러는 공작원이나 공작망을 직접 통제하며 조종하는 공작관이다.
해외 거점 도시에 투입되는 정보기관의 해외 파견 공작원/공작관은 백색(White)과 흑색(Black)으로 구분한다. 백색은 공직으로 위장한다. 재외공관의 공사·참사관 등 합법적인 외교관 신분이다. 흑색은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파이가 여기에 속한다. 목숨을 건 투사의 이미지 탓인지 ‘공작원의 꽃’이라고 불린다. 사업가·주재원·기자·교수·여행객 등 민간인으로 신분을 세탁한다.
김동식과 정규필, 수미 테리 사건의 세 갈래의 공작 이야기에는 공감하는 메시지가 있다. 공작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친구도 동맹도 없고, 비정함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김동식의 남파 공작과 정규필의 대북 공작이 그랬고, 수미 테리 사건은 디지털 정보 시대에도 인간에 의한 공작이 가장 유용한 전략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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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의 사진이 다 말해줬다…수미 테리 홀린 유혹의 실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479
2000만원짜리 김일성·김정일 얼굴 도자기
2004년 말, 주(駐)중국 대한민국대사관 무관보좌관(중령)이던 정규필은 평양백화점에 중국 상점 500개를 입점시키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정보사 소속 대북 공작장교 정규필은 2002년 10월 무관보좌관으로 중국에 두 번째로 파견됐다. 선양(瀋陽)에서 1995년부터 3년 동안 ‘만철소재 선양사무소장’이라고 신분을 위장한 흑색(블랙)으로 활동한 그는 귀국해 정보사 본부에 근무하다가 2년 만에 외교관 신분의 백색(화이트)이 됐다. ‘까마귀’에서 ‘백로’로 변신, 대북 첩보의 격전장이던 중국으로 복귀한 것이다.
공작원으로 뛰어든 ‘평양백화점 프로젝트’는 동갑내기로 절친했던 중국인 지인 A와 의기투합한 사업이었다. “유대인도 혀를 내두른다”는 그 유명한 ‘온주상인(溫州商人)’ 협회를 끌어들여 북한에 진출하는 구상이었다. 북한 측 카운터파트너는 김정일의 금시계를 하사품으로 받아 중국 측에 선물할 정도의 고위층이었다. 양해각서까지 완성될 정도로 교섭은 급물살을 탔다. 매장 한 곳에 중국인 현지 관리인 1명과 북한 주민 3명을 고용하며, 평양에 체류할 중국인 500명을 수용할 호텔을 건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A는 평양백화점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 김일성·김정숙(김정일 생모)·김정일의 컬러사진을 요청해 받아냈다. 이어 세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도자기를 주문 제작해 선물로 준비했다. 도자기 하나에 당시 시가로 2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고 A는 전했다. 도자기 전달식에는 북한 인사 3명이 나와 하나씩 품에 안고 돌아갔다고 한다. 북한이 문을 열어 평양에 500명이 들락날락하면 그 안에 우리의 정보원을 심을 수 있다는 속셈도 깔려 있었다. 사람의 운명은 모를 일이다. 사업이 무르익던 순간 A가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했다. 추진 동력을 잃은 평양백화점 프로젝트는 그렇게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공작 업무를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긴다. 평양백화점 사업을 벌이던 같은 해 희한한 만남이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베이징에 주재하던 언론사 특파원이 있었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느닷없이 툭 던졌다. 북한군 장교라고 밝힌 정체불명의 사람이 “한번 만나서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연락을 해왔는데, 꺼림칙하고 불안하니 대신 만날 의향이 있냐는 타진이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혹시 건질 게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시내 약속 장소에 두 명이 나타났다. “원산에서 근무하는 북한군 중좌(중령)”라고 한 명이 자신을 소개했다.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북한에서는 식량 배급이 잘 안 된다. 출장증을 끊어 중국에 나와 돈을 벌어 부대원들 먹여 살린다. ‘야동’ CD 5만 불어치만 구해주실 수 있겠냐.
5만 달러 상당의 CD를 외상으로 주면 50만 달러를 벌어 갚을 테니 거래를 트자는 제안이었다. 그냥 5만 달러를 현금으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외설적인 CD를 어디서 구할지 막막했다. 정규필은 그들의 제안을 밑지는 셈 치고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보사를 설득하고 자금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들의 신분 증명을 요구할 경우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고민 끝에 포기했다.
더중플-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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