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더중플 - 부동산 X파일
부동산 투자와 개발로 큰돈을 번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도전과 작전, 그리고 인허가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리 의혹까지 철저히 분석하고 날카롭게 파헤친 기사를 약속드립니다.
랜드마크급 건물 개발 비화부터 부동산 거부들이 돈을 번 기막힌 방법까지, 흥미롭고 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더중앙플러스 '부동산 x파일'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17) 시리즈의 일부 회차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나인원 한남(100억원), 유엔빌리지 내 주택 2채(100억원), 코인 및 주식투자 등(71억원), 페라리 등 고급 차 6대(20억원), 홍콩 백화점 등 쇼핑(9억2000만원), 홍콩 피부관리숍(1억6000만원), 전가족 퍼스트클래스로 미국여행(1억3000만원)…. 국내 최고 부자들의 집과 차, 그리고 돈 씀씀이를 열거한 게 아닙니다.
1400억원대 분식회계와 800억원대 횡령·배임, 그리고 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해 구속 기소된 이상영(42) 대우산업개발 회장과 한재준(53) 전 대우산업개발 부회장이 ‘회삿돈’을 사적으로 이용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회삿돈으로 초호화판으로 살다가 같은 날 나란히 구속 수감된 이 두 사람의 행각은 어느 엽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1.회삿돈 빼쓰기 경쟁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이씨와 한씨는 서로 경쟁하듯 회삿돈을 빼냈습니다. 우선 집을 사고 꾸미는 데 회삿돈을 썼습니다. 한씨는 국내 최고 부촌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주택 2채(한남 리버힐)를 2021년 5월 사들였습니다. 집값 및 취·등록세 납부를 위해 회삿돈 85억원을 썼습니다. 검찰은 이를 횡령이라고 명기했습니다.
한씨는 또 회사 직원에게 허위 기안문을 작성하게 시켜 자신과 배우자 명의로 된 집 3채(유엔빌리지 2채, 서초동 아파트 1채)의 인테리어 비용으로 회삿돈 9억7000만원을 썼습니다. 한남동으로 이사하기 전 한씨의 주소는 관악구 신림동 빌라(2015년), 관악구 남현동 빌라(2016년)였습니다.
이씨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매김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단지의 248㎡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회삿돈을 썼습니다. 이 아파트는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전환’ 형식으로 2018년 7월 공급됐습니다.
이 아파트 청약에는 전국의 자산가들이 몰려 평균 5.5대1의 경쟁률로 마감됐는데, 당첨자들은 한 달 이내에 계약금으로 임대보증금의 20%인 7억~10억원을 내야 했습니다. 만약 돈을 못 마련하면 계약 해지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씨는 이 때 회삿돈 7억원을 빌려 계약금을 냈습니다.
이씨는 2021년 3월 분양전환을 신청해 49억원에 이 집을 매입했습니다. 이 아파트의 시세가 최소 100억원 이상이니 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있는 셈입니다. 19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위 10위 단지’에서 나인원한남은 3위(98억원)를 차지했습니다.
‘회삿돈으로 고가차 굴리기’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입니다. 이씨는 벤츠 마이바흐를 타고 다녔고,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벤츠 S580도 회사 명의로 리스했습니다.
한씨는 무려 6대의 차를 회삿돈으로 이용했습니다.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4억9000만원), 페라리 포르토피노M, 벤츠 마이바흐, 레인지로버 5.0, 레인지로버 4.4, 카니발 하이리무진입니다.
이 중 흰색 페라리 포르토피노M은 인플루언서로 유명했던 J씨의 SNS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J씨는 ‘화류계에서 일하게 된 썰’ 등을 유튜브 등에 올렸고, 자신을 ‘아가씨 생활 10년+마담 생활 5년’ 경력자라고 소개했습니다.
J씨는 이력서를 위조해 대우산업개발에 마케팅 담당 전무로 입사하려 했다고 합니다.
이씨는 회사에서 대여받은 돈으로 주식 투자나 코인 투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1월에는 이씨 본인 명의의 증권계좌로 12억원을 회사로부터 대여받아 HLB테라퓨틱스라는 코스닥 상장 주식을 매수했습니다.
2017년 12월 21일 2만630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한 달 뒤인 2018년 1월 19일 4만9000원까지 급등했습니다.
#대기업 회장님이 거기서 왜
이씨의 회삿돈 사용 과정에서 DL이엔씨(옛 대림산업) 이해욱 회장(56)도 등장합니다. 2019년 12월 30일 이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27억원을 빌린 뒤 며칠 후인 2020년 1월2일 같은 금액을 대우산업개발 계열사로부터 대여받아 이 회장에게 갚았습니다. 대여금 상환을 가장하기 위해 이른바 ‘돌려막기’를 한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한씨는 이에 대해 “이씨가 회사에서 대여 받은 돈이 너무 많아 세무조사 시 문제(인정상여와 그에 따른 소득세 부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연말에 일부를 갚으라고 이씨에게 얘기했고 이씨가 이해욱 회장에게 돈을 빌려 일단 일부를 상환한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이씨의 얘기도 비슷합니다. 이씨는 “연말에 갑자기 30억원가량의 돈을 빌려줄 사람이 대한민국에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해욱이형이 떠올라 형한테 돈을 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해욱 회장의 지인들은 사적인 돈거래에 매우 엄격한 이 회장에게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 회장과 이씨가 도대체 얼마나 친밀한 관계이기에 이 회장이 거액을 선뜻 빌려줬냐는 얘기입니다. 이씨는 이 회장보다 13살 어립니다. DL이엔씨 측은 이에대해 “회장과 회장 지인간의 사적인 돈거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해욱 회장은 ‘사이드미러 접고 운전하기’ 등 운전기사에 대한 과도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후 2016년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이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또 2017년에는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서울 삼성동 남양주택 마을에 주택 3채를 사들인 후 ‘8m 담벼락’을 만들어 이웃주민들로부터 조망권 침해로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경이로운 법카 생활
법인카드 쓰기는 이씨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이씨는 10여 개의 법인카드를 썼습니다. 이 중 4개는 홍콩에서 생활하는 이씨의 와이프가 사용했습니다. 중국인인 이씨의 와이프는 홍콩에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36억원을 법카로 긁었습니다.
2018년에는 5억5000만원을 썼으니까 한 달에 5000만원가량을 쓴 셈이네요. 백화점 등에서 쇼핑한 금액이 9억2000만원이고, 호텔 숙박 및 호텔 서비스 이용에 2억5000만원을 썼습니다.
미용관리를 위해 2억원가량을 썼고 그중 1억6000만원은 피부관리숍에서 긁었습니다.
이씨는 이런 해외 법카 사용이 모두 대우산업개발 사업을 위한 업무상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대우산업개발 해외매출이 전무하다는 점 등을 들어 모두 이씨 부인의 개인 사용으로 추단했습니다.
한씨는 3장의 법인카드를 사용하면서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해 온가족이 미국을 방문하는 데 1억3000만원을 사용하고, 이씨가 회삿돈으로 리스한 흰색 페라리를 타고 다니게 했던 인플루언서 J씨에게도 법카를 쓰게 했습니다.
# 위조의 달인
한씨가 작성한 자신의 이력서는 화려합니다. 우선 학력 부분. 그는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 불어과에 입학했고, 미국 UCLA에서 비즈니스이코노믹스를 전공했다고 2021년 7월 작성한 이력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대원외고 졸업앨범에서 한씨의 이름과 사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외고를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졸업앨범에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UCLA는 졸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거짓으로 밝혀진 과정이 기가 막힙니다. 이씨와 한씨는 여러 가지 일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한씨의 학력과 경력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이씨 측에 대응하기 위해 한씨는 자신의 이름이 나와 있는 UCLA 성적증명서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증명서가 ‘위조’된 것이었습니다. UCLA의 독특한 학기제가 ‘위조범’을 잡아냈습니다. 이 학교는 3학기(한 학기가 10주)제로 운영하는데 한씨는 일반 대학의 학기제와 같은 성적표에 UCLA이름을 넣은 성적표를 제시한 겁니다.
한씨가 자신의 경력이라고 제시한 내용도 거짓투성이입니다. 우선 이 이력서에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대우자판건설부문 고문으로 일했다고 썼는데, 옛 대우자판 임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거짓이었습니다.
한씨가 밝힌 또 다른 자신의 이력에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에서 개인사업을 했다고 돼 있습니다. 또 그 이전에는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수석 컨설턴트(이탈리아)로 일했다고 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한씨는 이씨 또한 여러 서류를 위조했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의 대우산업개발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씨의 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행사 혐의가 적시돼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대우산업개발을 취재하면서 계속 든 생각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였습니다. 대우산업개발이 ‘무법지대’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씨와 한씨는 2016년 대법원에서 ‘대우산업개발 자금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동일한 수법을 또 썼고, 금액은 훨씬 키웠습니다. 이 회사는 해마다 회계법인으로부터 정식 회계감사를 받았고, 세무서로부터도 정기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재무제표 등을 깐깐하게 들여다봐야 할 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 2명은 대우산업개발과 관련,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또 경찰대 9기인 김모 경무관은 대우산업개발 수사 무마 대가로 이씨로부터 3억원을 받기로 하고 그중 1억2000만원을 실제 받은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김 경무관은 1993년 경찰대 졸업당시 남학생을 제치고 수석졸업해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관련된 사람이 이게 다일까요. 이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퓨전 이태리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식당에 프라이빗한 룸이 몇 개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고위 공무원 등을 자주 접대했다고 대우산업개발 직원들에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씨 측은 회사 대여금을 과다하게 사용한 점에 대해 “배당으로 받아갈 수도 있는 돈인데 세금을 아끼기 위해 대여금 명목으로 수령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배당으로 받아가면 배당금의 50%를 세금으로 떼고, 대우산업개발 전체 주식의 40%를 갖고 있는 소액주주와 금융기관에도 배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소액주주에게 돌아갈 돈과,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얘기입니다.
한씨의 얘기는 이씨 측과 또 다릅니다. 한씨는 “배당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대우산업개발은 이씨와 한씨가 주요 주주인 회사가 2011년 6월경부터 회생인가절차를 진행 중이던 대우차판매 건설사업 부문 인수를 추진해 2011년 12월 회생절차를 종결했습니다.
‘이안’이라는 브랜드를 써 전국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을 분양했고, 건설업계 순위를 나타내는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75위(2023년 기준)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12년 만에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이씨와 한씨가 회사를 경영한 10여년 동안 개인 호주머니 속으로 증발된 막대한 세금과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이 회사 소액주주의 피해, 과연 누구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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