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홍콩관광청 공동기획 I 홍콩백끼
」홍콩백끼 출발합니다
한 도시에서 100끼를 맛보는 여정이 실현될 수 있었던 건, 그 무대가 홍콩이기 때문입니다. 홍콩은 세계가 인정하는 미식의 고장입니다. 2024년 현재 홍콩에는 78개의 미쉐린(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인구(약 734만 명)는 서울보다 적지만, 별 식당은 서울(32개)의 2배가 넘습니다. 오늘도 홍콩에선 2만8000개가 넘는 식당이 각축 중이라지요. 매달 300개가 넘는 식당이 문을 닫고 또 새로 문을 엽니다.
처음 홍콩에 가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시야를 꽉 채우기 때문입니다. 100층에 육박하는 초고층 빌딩과 페인트 다 벗겨진 낡은 상가가 조화를 이룬 풍경이라니요. 초행자는 홍콩 거리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명품 매장이 늘어선 센트럴(中環)의 쇼핑 거리를 거닐다가 비린내가 진동하는 해산물 거리로 바로 빠졌을 때의 당혹감은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홍콩 식당에서는 합석이 흔하지요. 한 테이블에서 누군가는 고기 덮밥을 허겁지겁 먹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스트와 밀크티를 고상하게 즐깁니다. 도로 귀퉁이에서 힘차게 웍을 돌리는 ‘난닝구 아재’와 구운 오리머리 내건 식당, 그리고 그 식당에 붙은 미쉐린 표식. 이 낯선 풍경이 홍콩에서만은 낯설지 않습니다.
홍콩백끼는 모두 20회로 구성됩니다. 홍콩을 대표하는 음식문화 딤섬(點心), 홍콩 외식 시장의 두 풍경 다이파이동(大牌檔)과 차찬텡(茶餐廳), 홍콩 영화 속의 음식, 1만원도 안 되는 길거리 음식과 30만원이 넘는 파인다이닝, 기상천외한 엽기 음식과 480m 상공에서 홀짝이는 칵테일까지 홍콩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룹니다. 그 대장정의 첫걸음을,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내딛습니다. 이름하여 ‘박찬일의 한눈에 보는 홍콩 요리사(史)’입니다.
홍콩백끼① '한눈에 보는 홍콩 요리사' 미리 보기
하루 세끼 외식하는 나라
알아두기 : 중국 음식 사대천왕
알아두기 : 홍콩 가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
패스트푸드가 된 슬로푸드
알아두기 : 홍콩밥상 서바이벌 단어장
길거리 음식 천국
박찬일의 한눈에 보는 홍콩 요리사
」1998년 이전에 홍콩 카이탁공항(啓德機場)은 도심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공항에 착륙하려는 조종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홍콩 디스커버리’라는 말은 흔한 슬로건인데, 공항부터 모험의 냄새를 풍겼다. 아크릴로 번뜩이는 거대한 카오스 같던 몽콕(旺角)의 가게들, 올려다보면 멀미가 일 것 같던 센트럴(中環)의 고층 빌딩들, 표준어의 혀가 말리는 원만한 권설음 대신 ‘기역 받침’까지 알뜰하게 살리는 광둥어의 독특한 성조가 귀에 익숙할 때면 홍콩 음식에도 푹 젖어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홍콩의 음식은 큰 변화가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테이크아웃하기 좋은 렁쏭반(兩餸飯·도시락점)이 늘어난 정도다. 아, 2023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음식 가격 상승은 홍콩도 피해 가지 못해서, 시내 허름한 식당의 메뉴판에서 급조하듯 앞자리 숫자를 갈아치운 게 보인다는 점도 근래의 변화다.
하루 세끼 외식하는 나라
홍콩은 인구 700만 명 이상을 헤아리는데, 거주 가능 지역은 좁아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구 과밀 지역이다. 영국 지배에 놓인 후에도 지속해서 중국 본토로부터 인구가 유입됐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시기와 1950~60년대에 걸친 대기근과 문화혁명의 파도에 많은 수의 중국인이 홍콩으로 밀려들었다. 한때 주택 1㎡당 1명의 인구가 산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주택 안에 충분한 조리시설을 갖추지 않고 간단한 식사 외에는 매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동남아 지역의 보편적인 관습이기도 하다.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홍콩만의 독특한 상황이 더해져 현재의 식문화를 구축했다.
홍콩은 크게 광둥(廣東) 요리에 속하는 권역으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쓰촨(四川) 등 중국 내 주요 음식문화가 더해졌다. 또 홍콩 음식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인인 영국의 오랜 지배는 서양 요리의 자장을 강력하게 입혀 놓았다. 빵 문화가 현지화하면서 보통 사람의 아침식사와 간식의 일부가 됐고, 이는 홍콩의 음식문화를 보편적인 중국 음식과 구별하는 핵심이 됐다.
홍콩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금융과 무역으로 번성하면서 세계인이 몰려들어 단순히 ‘광둥 요리+영국식 요리’를 넘어 홍콩만의 개성 강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수준급으로 요리하는 이탈리아·일본·베트남·태국·인도 요리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홍콩의 경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특징이다.
🍜 중국 음식 사대천왕
음식은 결국 땅의 역사다. 지역 풍토가 음식에 매겨져서다. 중국은 덩치가 워낙 커 지역마다 지리 조건은 물론이고 기후, 심지어 민족도 다르다. 하여 음식 문화도 상이하게 발전했다. 중국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이를테면 서울의 홍콩반점에서는 짜장면을 팔지만, 홍콩에서 짜장면을 사 먹는 건 대구에서 홍어삼합 사 먹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중국 음식은 지역에 따라 크게 광둥(廣東)‧산둥(山东)‧쓰촨(四川)‧장쑤(江苏) 네 개로 나뉜다. 이른바 ‘중국 4대 요리’다.
광둥 요리 : 중국 남부 지방의 요리. 홍콩 요리가 여기에서 기원했다. 바다가 지척에 있어 예부터 해산물 요리를 즐겼고, 바닷길을 통해 세계 각지의 식재료를 받아들였다. 다리 네 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재료에 한계가 없다. 심지어 거머리도 먹는다. 1965년 광저우 요리전람회에서 소개된 메뉴가 5457개에 달했다고 한다. 더운 기후의 영향으로 저장성 높은 바비큐 요리가 발달한 게 특징이다. 주요 양념은 간장. 거의 모든 광둥 요리에 간장이 들어간다. 대표 음식은 차씨우(叉燒·돼지고기 바비큐)를 비롯해 돼지‧거위‧비둘기 등을 활용한 바비큐, 제비집 수프, 딤섬, 생선찜, 뱀탕 등.
산둥 요리 : 산둥 지역은 문명을 일으킨 황허(黃河)가 흐르고, 공자·맹자가 태어난 땅이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일찍이 인류가 번성해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화북(華北) 지역에 음식문화를 퍼뜨렸다. 이른바 ‘북경 요리’도 산둥 요리에서 파생했다. 산둥 요리는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국내에서 중화요리를 이끈 1세대 대부분이 산둥성 출신 화교다. ‘진진’의 왕육성(70) 셰프는“산둥 요리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요히 여기기 때문에 진한 양념보다는 육수를 두루 활용하고 센 불에서 빨리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표 음식은 탕추(糖醋‧탕수육의 원형), 작장면(炸醬麵‧짜장면의 원형), 총소해삼(蔥燒海蔘‧대파 해삼찜) 등.
쓰촨 요리 :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습도가 높은 쓰촨성 지역의 사람은 예부터 땀을 빼기 위해 매운 음식을 즐겼다. 생강·마늘·고추·후추·산초·감주 등 다양한 조미료와 향신료를 활용한다. 대표 음식은 마라샹궈(麻辣香鍋), 훠궈(火鍋), 마파두부(麻婆豆腐), 라조기(辣椒鷄), 어향육사(魚香肉絲‧중국식 고추 잡채), 딴딴면(擔擔麵) 등. 2010년 유네스코가 쓰촨성의 성도(省都) 청두(成都)시를 ‘맛있는 음식의 도시(美食之都)’로 지정했다.
장쑤 요리 : 장쑤성과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의 지역 음식을 아우른다. 상하이가 대도시여서 ‘상해 요리’로도 알려져 있다. ‘생선과 쌀의 고장’으로 통할 만큼 식재료가 풍부하고, 해산물과 육류를 두루 사용한다. 삶거나 찌거나 재우거나 하는 식으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는 요리가 많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특징. 대표 음식은 동파육(東坡肉), 남경오리(鹽水鴨·소금에 절인 오리를 찐 요리), 돼지 다리 냉채, 샤오룽바오(小籠包·육즙이 많은 만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