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맞이 '더중플' - 골프 인사이드
그린 위에 펼쳐진 골프 이야기. 18홀에 담긴 인생 이야기.
골퍼는 한 라운드에서 희망, 욕심, 집착, 좌절, 분노 등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과 해탈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골프는 완벽함이 없습니다. 300야드를 치면 310야드를 치고 싶은 것이 골프입니다. 그러다 깊은 벙커에 빠지기도 합니다. 골프 인사이드는 이처럼 불완전한 게임을 하는 완벽하지 못한 골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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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우연히 TV에서 테니스 중계를 보던 미국의 한 흑인 남성은 여성 선수가 우승 상금으로 4만 달러를 받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여성 테니스 선수가 일주일 동안 버는 돈이 자신의 1년 벌이보다 많았다.
그래서 딸을 낳으면 반드시 테니스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다. 윌리엄스 자매는 적어도 그의 아버지에겐 돈을 보고 시작한 기획 선수였고 그 목적에 맞게 엄청난 돈을 벌었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 우승 이후 당시 한국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었다. 박세리의 엄청난 수입이 뛰어난 선수들을 골프로 유입시키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리 키즈의 주역인 88년생은 당시 열 살이었다. 그들은 돈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처럼 이 운동을 잘하면 딸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게 될 걸 알았다. IMF 금융위기로 어려운 시기였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논란이 아직도 뜨겁다. “금메달 원동력은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분노였다”는 안세영이 나이키와 광고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돈 때문이었어’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안세영의 말은 거칠었고 성실히 살아온 동료와 일부 직원을 모욕했다. 시기도 부적절했다. 그러나 돈 얘기는 정당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선수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돈 계산을 한다.
오히려 뛰어난 선수일수록 냉철하게 계산하는 경향이 있다. 마이클 조던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드림팀’ 금메달 시상식에서 대표팀 점퍼의 리복 로고를 가렸다. 자신의 개인 스폰서 나이키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이기적인 거라면 대표적인 스포츠가 골프다. 골프는 철저한 개인 종목으로 선수들은 팀 스포츠 선수들과 달리 동료에게 패스(희생)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골프가 어느 정도 인기 스포츠가 된 건 선수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본다.
PGA 투어는 미국 프로골프협회(PGA)와 갈라서면서 급성장했다. TV 중계권 수입을 일반 레슨 프로와 나누지 않으려는 선수들의 욕심이 현상 유지를 원하는 골프계의 반대를 이겨내고 독립할 수 있게 했다.
타이거 우즈는 전성기 초청료 300만 달러씩 받고 PGA 투어 대신 유러피언 투어나 아시아 대회에 나가곤 했다. PGA 투어는 당신이 없으니 시청률이 떨어지고 스폰서를 얻기 힘들어진다고 호소했지만 우즈는 “나는 자유계약선수이고 내 스케줄은 내가 정한다”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우즈는 PGA 투어 상금을 5배로 늘렸고 골프가 세계로 퍼지는 데도 일조했다.
박세리는 2002년 오피스 디포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 선글라스로 모자의 삼성 로고를 가렸다. 스폰서 삼성에게서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한 시위, 일종의 파업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무명 때부터 박세리를 후원한 삼성은 의리를 저버린 선수에게 서운해했고 이후 사실상 골프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박세리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이후 CJ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매년 25억원을 받았다. 박세리는 의리보다 가치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박세리의 행동은 논란이 됐지만 그 이기심이 골프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다른 부분에서도 그렇듯 프로 스포츠도 투쟁의 역사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미 55년 전인 1969년 한 선수가 팀 동의 없으면 자유계약선수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현대판 노예제도라 비판하고 소송을 벌였다.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권리(돈)를 위해 여러 차례 파업을 했다. 리그 혹은 구단주는 직장 폐쇄로 맞섰다. 때론 선수가, 때론 구단주가 이겼지만 전반적으로는 선수들이 승리했다. 선수들에 대한 보상이 늘었고 인기는 꾸준히 올라갔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스타 선수들의 욕심이 그 스포츠를 키웠다.
배드민턴협회는 비인기 종목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연봉 상한제, (사실상의) 국가대표 의무 복무제, (사실상의) 개인 스폰서 금지 등의 조항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선 노예계약 논란이 일어 사라지고 있는 독소조항들이다.
협회는 비인기 종목이라 일부 스타 선수가 희생하지 않으면 실업팀을 유지할 수 없고 주니어 선수 육성도 어렵다고 한다. 기반이 무너져 결국 배드민턴이 망한다고 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은 “모든 선수가 ‘그런 환경’에서 태극마크 달고 뛴다”고 했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이니까 스타가 희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비인기 종목이니까 오랜만에 나온 스타를 더 아끼고 키워줘야 한다. 20세기 말 방수현의 인기는 지금 안세영의 인기보다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가 그때 협회라는 굴레를 깨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아직도 선수들이 '그런 환경'에서 태극마크 달고 뛰고 있을까.
실력 없는 건 협회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기자는 신동아에 “탁구 스타 신유빈은 연봉이 2억4000만원에 이른다. 광고 출연도 10곳이 넘는다. 각종 행사 출연료도 짭짤하다. 그렇게 대표선수를 풀어놓은 탁구협회는 도대체 어떻게 운영하기에 끄떡없는가. 배드민턴 인구는 탁구 인구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아마추어 협회이니 마케팅 능력 부족 같은 건 그렇다 쳐도, 경기력과 밀접한 신발과 라켓도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못 쓰게 한 점은 놀랍다.
안세영은 최근 입장문에서 “저는 배드민턴이 비인기 종목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될 수 있고, 재능 있는 인재도 많이 유입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에 동감한다.
호주에는 ‘키 큰 양귀비’ 문화가 있다. 사회에는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니 무리에서 홀로 불쑥 솟은 키 큰 양귀비는 솎아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된 후 배드민턴협회를 비롯한 일부 종목 협회에 이런 정서가 있는 듯하다.
우리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를 해보면 실력이 다 드러난다.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키 큰 양귀비를 잘라내다 보면 키 큰 유전자는 사라지고 결국 양귀비 군락의 평균 키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배드민턴은 올림픽 메달 종목이 아니라 순수한 생활체육 종목이 될 것이며 공식후원사 대표팀 지원금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미 배드민턴협회는 키 큰 양귀비 이용대를 잘라냈다. 이번에 안세영마저 잘라버린다면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는 없다. 어린 유망주들이 잘해 봐야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할 거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배드민턴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세리 키즈의 부모에게 물어보라.
안세영은 배드민턴협회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안세영에게 ‘시스템으로 성공하고 나서 그 시스템을 걷어차려 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란 건 이런 튀는 선수를 한 명이라도 만들어내려고 만든 거다.
협회는 안세영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지 말라. 안세영은 배드민턴협회에 빚이 없다. 안세영은 28년 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그 자체로 배드민턴에 몇 배 갚았다.
기자가 아는 한 배드민턴인은 “이기적으로 돈벌이에 나설 거면 안세영은 인기 스포츠인 골프를 했어야 한다. 왜 배드민턴을 하냐”고 한다. 그러나 골프를 인기 스포츠로 만든 건 박세리의 선글라스 파업 같은 이기심이었다.
📝골프 인사이드 - 스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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