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방해" 욕먹던 대구 이만옹, 마스크·눈물 이어 31번째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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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진천동에 위치한 거대 원시인 석상 '이만옹'이 결혼 장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달서구]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 위치한 거대 원시인 석상 '이만옹'이 결혼 장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달서구]

대구 달서구에 있는 거대 원시인 석상 ‘이만옹’이 31번째 변신을 시도했다. 지자체가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적힌 풍선이 달린 웨딩카에 탄 남녀 캐릭터 피켓을 이만옹 앞에 세우면서 이번엔 결혼 홍보대사가 된 것이다.

12일 달서구에 따르면 길이 20m, 높이 6m짜리 석상 ‘이만옹(二萬翁)’은 가을을 맞아 9월부터 결혼장려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달서구는 2017년 전국 최초로 결혼장려팀을 신설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14커플 결혼을 성사시키는 등 청년 결혼을 응원하고 있다. 이에 이만옹도 긍정적 결혼 문화 확산을 위해 이만옹도 나섰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저출산 문제라는 국가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만옹 홍보대사와 함께 청년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2018년 이만옹의 모습. 중앙포토

2018년 이만옹의 모습. 중앙포토

‘이만옹’은 지난 2월 세워진 지 6년 만에 달서구 홍보대사가 됐다. 앞서 1997년과 2006년 달서구 일대 아파트 개발지 등에서 선사시대 유물과 구석기 유물이 잇따라 발견됐고, 달서구가 이를 관광 콘텐트화하기 위해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일대에 이만옹을 세웠다. 대구 출신으로 세계적인 광고 제작자인 이제석씨가 나서 “최고의 역사성을 가진 ‘돌’이라는 소재로 이 지역에 묻혀 있는 역사적 잠재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며 석상을 만들었고, 2억원을 들여 2018년 2월 준공했다.

처음부터 이만옹이 사랑받은 건 아니었다. 큰 석상이 눈을 감은 채 도로변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모습이어서 ‘흉물 논란’이 일었다. 인근 상인은 작품 규모가 너무 커 장사에 방해가 된다고 민원을 넣기도 했다. 모두에게 핍박받던 이만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친근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2021년 2월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구 원시인 조형물에 대한민국 코로나19 백신접종 시작을 알리는 대형 주사기가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2021년 2월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입구 원시인 조형물에 대한민국 코로나19 백신접종 시작을 알리는 대형 주사기가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달서구는 이만옹 활용법을 고민하다 2020년 5월 15일 마스크 착용 독려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마스크를 씌웠다. 한 달 뒤 더위가 시작되자, 석상이 쓴 마스크에 참을 ‘인(忍)’자를 써놓으면서 ‘누구보다 더위에 강한 대구 시민이 앞장서 참아내자’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마스크를 쓴 거대 원시인이 눈길을 끌었고, 달서구는 계속해서 이만옹의 변신을 시도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이만옹에게 산타모를 씌워 “마스크 쓰Go, 성탄 조용히 보내Go, 내년을 기대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대구 달서구의 상징인 대형 원시인 석상이 2022년 5월 718일 만에 마스크를 벗었다.[사진 대구 달서구]

대구 달서구의 상징인 대형 원시인 석상이 2022년 5월 718일 만에 마스크를 벗었다.[사진 대구 달서구]

2021년에는 백신접종 주사기를 설치해 백신 접종을 홍보하는 등 이만옹은 마스크를 쓴 채로 7번 변신했다. 그러던 2022년 5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에 맞춰 이만옹도 마스크를 벗었다. 그해에는 투표를 독려하고, 여름 휴가 때는 밀짚모자를 씌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다. 2023년에는 계절마다 변했다. 설 연휴를 맞아 도령 모자와 복주머니를 갖췄고, 여름엔 수경을, 가을엔 책을, 겨울엔 목도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지난 3월 거대 원시인 조형물 '이만옹'이 지난해 역대 최저 0.72명의 합계출산율 속에 침몰하는 배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인구위기 문제 대응을 위한 캠페인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거대 원시인 조형물 '이만옹'이 지난해 역대 최저 0.72명의 합계출산율 속에 침몰하는 배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인구위기 문제 대응을 위한 캠페인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이만옹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지난 2월에는 홍보대사로 임명되면서 달서구는 2만년의 역사적 가치를 의미하는 ‘이만’과 존경·친근함을 뜻하는 ‘옹’을 합쳐 이만옹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만옹이 홍보대사가 되면서 메시지도 다채로워졌다. 올해 3월에는 2023년 합계 출산율이 0.72명이라는 통계청 발표가 나오자 이만옹이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투표 독려에 나섰고, 가족의 달 5월에는 원시인 가족이 유채꽃 앞에서 웃는 조형물을 이만옹 앞에 설치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4년간 31차례 변신을 거듭하면서 민원은 줄었고, 이만옹은 시민에게 호의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이 구청장은 “앞으로도 이만옹 홍보대사가 지역민과 방문객에게 흥미롭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달서구만의 독특한 매력을 전국에 전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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