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영끌 시대…'강남 집' 빚내 산 사람, 24%가 10억 이상 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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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직장인 김모(32)는 지난 7월 8억원의 빚을 내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를 11억5000만원에 매수했다. LTV(담보인정비율) 70% 규제를 꽉 채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7억5000만원을 받은 것에 더해 신용대출 5000만원까지 보탰다. 앞서 김씨는 2019년에 2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아 서울 강서구의 5억원짜리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매했었다. 당시에도 LTV 상한 40%에 맞춰 주담대를 받고 다른 대출을 더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로 마련한 집이었다. 이번에는 ‘영끌’을 넘어 ‘초영끌(영끌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는 것)’로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갈아타기’에 성공한 것이다.

김씨는 “기존에 집이 오르는 것을 체감하면서 서울과 상급지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LTV 규제 완호로 대출 가능금액이 늘면서 갈아타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집값 또 오른다” 인식에…5억 이상 ‘초영끌’ 대출 40%  

5억원 이상의 고액 대출 자금이 주택시장에 몰리면서, 최근 서울 집값 상승은 물론 가계부채 급등세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상승기를 경험한 수요자들이 이번 정부의 완화된 LTV 규제를 이용해 초영끌 대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과 마용성 등 이른바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수요 역시 고액 대출을 키웠다.

13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서울 부동산 자금조달계획서’를 중앙일보가 전수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1~6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한 서울 부동산 거래 중 61.93%가 대출로 매수 자금을 마련했다. 이 중 대출액이 5억원 이상인 거래가 37.87%에 달했다. 국토교통부는 ▶거래 가액이 6억원을 초과하거나 ▶투기과열지구(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 속한 주택을 매수할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서울 아파트 거래 대다수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는 셈이다.

대출액을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대출을 낀 전체 거래 가운데 7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거래는 15.62%, 10억원 이상은 6.12%를 차지했다. 웬만한 집 한 채 가격 수준의 대출을 받아 집값을 마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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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초고액 대출로 집을 사는 비중이 컸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산 거래 중 10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비중은 강남구가 23.81%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21.1%)와 용산구(11.96%)가 뒤를 이었다. 10억원 이상 대출로 집을 산 비중이 두 자릿수가 넘는 곳은 서울에서 강남구‧서초구‧용산구‧종로구(10.24%) 뿐이었다.

서초구(35.31%)와 강남구(38.49%)에선 7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거래의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많았다. 7억원 이상 대출을 낀 거래의 비중은 최근 가격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마포구(18.62%)와 용산구(25.57%)‧성동구(22.91%)에서도 높게 나타났다. 특히 ‘마용성’은 5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거래 비중이 각각 43.03%‧45.57%‧47.86%로 절반에 달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LTV 규제 완화에…상급지 대출 수요↑

이들 지역에서 대출액이 크게 나타난 1차적인 이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 수준 자체가 높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 정부의 LTV 한도 상한이 높아진 점도 한몫을 했다. LTV는 주택 가격 대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을 뜻한다. 정부는 2022년부터 무주택자‧1주택자에 대해 LTV 70%를 적용하고, 규제지역(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 대해서만 50%를 적용하고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해선 LTV를 80%까지 열어준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대부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LTV를 40%까지 조인 것이 오히려 풍선효과를 일으켜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이미 집값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LTV 규제가 완화되자, 선호지역에 입성하려는 수요가 초고액 대출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대출자의 소득 수준을 보고는 있지만, 소득이 높은 경우엔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대출이 잘 나오니 자금여력이 되는 사람은 대출을 보태 상급지로 갈아타도 실패는 없을 것”이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최근 흐름을 살펴보면 상급지 집값과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며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를 기점으로 전세가격 상승, 금리인하 기대감까지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집값이 또 급등할 수 있다는 인식이 수요자들 사이에 갑자기 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20~2021년 집값 상승기를 겪은 이들의 경우, 집을 살 때 대출을 막대하게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제약이 덜한 점도 큰 몫을 했다.

이 같은 ‘초영끌’ 흐름은 서울 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해, 전반적인 집값을 끌어올리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출을 최대 한도로 받아 차익을 얻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가격이 덜 오른 서울 외곽지역 매수부터 뛰어들면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7월 노원구 아파트 거래량은 722건으로 전달 대비 60.80% 증가했다. 도봉구도 173건에서 236건으로 36.41%, 강북구는 102건에서 133건으로 30.39% 늘었다. 거래량이 늘면서 이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전고점의 82~85%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다.

지난 5월 상공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송파구 등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지난 5월 상공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송파구 등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막대한 대출, 금융안정 저해 가능성”

전문가는 막대한 대출에 의존해 무리해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득 대비 서울 아파트 가격 배율이 26배에 달하는 상황에서(지난해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주택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 대출을 받은 가구의 취약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원리금 상환부담이 증가하면 가계 소비 여력이 위축되고, 구조적으로 내수가 둔화하는 요인으로도 번질 수 있다. 한은은 소비를 제약하는 DSR 임계치를 47%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수준을 넘어서는 가계 비중은 2013년 5.1%에서 지난해에는 12.2%로 크게 늘어난 상태다.

최근 잇따른 대출규제로 부동산 거래량은 주춤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장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거로 본다. 이재국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서울 아파트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가격 상승이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주요 입지 아파트의 경우 매도 매물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가격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양천구 신정동의 중개업소 대표 정모씨는 “최근 상담 손님들 가운데 갈아타기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거나 대출 조건, 가격 등이 안 맞아 매수를 보류한 사례가 절반 가량”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아파트 매수를 원하는 잠재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정부는 우선 이달 적용된 스트레스 DSR 2단계 효과를 보고, 추가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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