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한국 창업 생태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중앙일보 연중기획 ‘혁신 창업의 길’에서 인터뷰한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 53명에게 물었다.
응답한 스타트업 대표 중 42.3%가 현 시점 한국 창업 생태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창업 당시 생태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65.4%인 것과 비교하면 2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이들은 딥테크 스타트업 특성상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인데 투자금 대부분이 초기에 몰려 있어 초·중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 인공지능(AI) 솔루션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 유럽은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나, 한국은 후기로 갈수록 지원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고, 모빌리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벤처캐피털(VC)들의 평가 시스템이 미비하다보니 모험 자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그 결과 (수익 실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딥테크보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상황에 대해선 “정부 정책 방향은 대체로 긍정적(반도체 장비 스타트업 대표)”이라고 평가하는 쪽이 있는 반면, “규제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혁신적 창업은 어려울 것(바이오 스타트업 대표)”이란 비판적인 견해도 나오는 등 시각이 갈렸다.
오픈 이노베이션(기술과 아이디어 등을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개방형 혁신모델)이라는 기조 아래 대기업과 스타트업 상생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협업에 확신이 없는 상태다.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25%만이 ‘긍정적’이라고 대답했다. ‘그저 그렇다(42.3%)’와 ‘부정적(32.7%)’이라는 대답이 더 많았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기업과 협업을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돈만 투자하는 역할이 아닌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CVC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컸다. “펀드 중심의 VC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 특정 사업과 관련된 다른 회사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투자자)로서의 대기업 CVC의 역할이 필요하다. 싸게 회사를 인수해 몸집 불리기에 급급한 대기업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AI 솔루션 스타트업 대표)”는 의견이 나왔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에 대해선 53.8%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응답자 중 절반은 과거보다 이들 역할이 커졌다고 답했다. 대학이나 출연연마다 창업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 과거보다 창업 문화가 정착돼가고 있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