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 찬성, 오세훈·조국 반대…'지구당 부활론' 셈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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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구당 부활 논쟁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찬성하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반대하는,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결 일색인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대립 구도가 짜였다.

거대 양당이 중심인 중앙정치 무대를 기준으로 보면 지구당 부활은 이미 대세에 가깝다.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지구당 부활에 공감대를 형성한 데 이어, 9일 국회에서 열린 지구당 활성화 토론회에서도 여야는 한목소리를 냈다. 한 대표는 “지구당이 돈 문제에 약하다지만 시대가 변했고, 법 개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증하겠다”고 했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구당은 정치를 개혁해 시민이 더 참여하게 하는 새 정치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든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10일 페이스북에 “여야 대표가 함께 추진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여도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퇴보로 유턴하는 게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인가”라고 썼다. 오 시장은 총선 이후인 지난 5월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지구당 부활론을 처음 띄웠을 때도 “퇴보”라고 견제구를 던졌는데, 이날 더 강한 어조로 반박한 것이다. 오 시장은 2004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당시 부패 통로로 지목된 지구당을 폐지하는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고 이 법은 현재도 ‘오세훈법’으로 불린다.

지구당 부활을 둘러싼 한 대표와 오 시장의 의견 충돌은 여권의 화제였다. 여당 관계자는 “차기 대선 주자인 둘의 충돌을 ‘미래 권력 줄다리기’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오 시장의 이름이 붙은 상징적 법안이 한 대표 주도로 폐기 수순을 밟는 모양새가 된 것도 양측의 긴장감을 키운 요인이다.

이 논쟁에 정치권 ‘빅샷’들도 뛰어들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구당 부활이 청년과 신인에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고, 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구당은 중앙과 지방의 소통 창구가 될 것”이라고 찬성파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에 “부패를 위한 제도적 기틀 만들기”(홍준표 대구시장), “거대 양당 정치인만 좋은 일”(조국 대표), “지역 토호와 정치 유착 발생 우려”(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반대파에 선 이들도 적지 않다. 진영을 떠나 찬성파와 반대파가 합종연횡하듯 뒤엉킨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배 의원, 박 원내대표, 한 대표, 윤상현 의원, 김종혁 최고위원.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배 의원, 박 원내대표, 한 대표, 윤상현 의원, 김종혁 최고위원. 뉴스1

지구당은 1962년 정당법 제정으로 처음 도입된 정당의 지역 조직이다. 당시 정당들은 지구당을 기반으로 지역구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후원금을 모금해 당원을 관리하면서 각종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후원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지구당이 불법 정치 자금 수수의 통로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2004년 오세훈법 통과로 폐지됐다.

지구당 부활을 찬성하는 이들은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의 ‘빈부 격차’를 부각한다. 지구당은 사라졌어도 현역 의원은 여전히 지역 사무소(일명 연락소)를 통해 지역을 관리하고,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반면, 후원금을 못 받는 원외 인사는 사비를 들여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것 외에는 지역을 관리할 근거지가 없어 양측의 격차가 날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원외 인사도 지역 조직을 다질 수 있게 돼 당의 체급이 커지고, 원외 신인들도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게 찬성파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한동훈(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국회에서 회동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국회에서 회동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지구당 부활에 한목소리를 내는 건 당권→대권 직행을 노리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원내 기반이 약한 한 대표는 지구당 부활이 성사되면 원외 조직을 든든한 우군으로 둘 수 있다. 수도권 지구당 부활은 한 대표의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공략에 힘을 싣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 대표 측은 “잇따른 수도권 참패의 원인으로 ‘당 지역 조직의 몰락’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며 “수도권 조직 복원이 정권 재창출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지구당 부활은 팬덤 정치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명 팬덤이 지구당을 고리로 오프라인 조직까지 갖추면 파괴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취약점인 영남 공략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영남 지구당 조직을 1년만 잘 운영해도 이 대표의 전체 파이는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2024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2024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반대 측에서는 지구당 부활이 ‘지역 유력인사-정치인-중앙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부패 커넥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본다. 지구당 운영의 핵심은 결국 자금인 만큼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경제력을 갖춘 지역 인사들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특정 지역 인사들이 공천이나 당의 의사결정 등 세세한 정치 행위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경제력·조직력이 달리는 신인은 결국 원외 지구당에서도 겉돌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당 원외 인사는 “현역·원외의 불균형은 중앙당 차원에서 원외 지원을 확대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원외 인사를 더 많이 참여시키면 된다”며 “지구당 부활이 청년 정치인을 살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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