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내세운 광주비엔날레…판소리도 광주도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필립 자흐(41)의 신작 ‘부드러운 폐허’. [연합뉴스 ]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필립 자흐(41)의 신작 ‘부드러운 폐허’. [연합뉴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좁고 어두운 복도, 자동차 소음과 사람들의 웅성거림만 들렸다. 나이지리아 출신 에메카오그보(47)가 나이지리아 라고스 등지의 다양한 소리를 녹음해 만든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의 첫 작품이다. 6일 전시장에서 만난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은 “도시 생활의 청각적 인상으로 전시를 시작하는 게 중요했다. 밀집된 도시 공간의 메아리처럼, 여러 예술가의 작품이 내는 반향을 느껴보시라”고 말했다.

30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의 빈집, 버려진 파출소 일대에서 7일 개막했다. 프랑스의 니콜라 부리오 감독이 30개국 72명의 작가로 전시를 꾸렸다. 부리오는 1998년 예술은 ‘만남의 상태’라고 주창한 『관계미학』을 출간했고, 미술관에서 요리해 먹는 등 관객 참여를 강조한 스타 큐레이터다. 그의 전시를 보기 위해 퐁피두센터, 프리츠커 건축상 재단, 모리 미술관 등 해외 주요 미술 관계자들도 광주를 찾았다. 부리오 감독은 주제와 관련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를 언급했다.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전후 폐허가 된 한국의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판소리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공간을 뜻하는 판과 소리로 이뤄져 있다. 판소리를 전시 개념으로 가져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을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겹침 소리(polyphonies),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등으로 나눠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두기, 분쟁지역, 분리정책 등 오늘날 사회의 공간 문제를 다뤘다. 경찰에게 체포되는 흑인 이미지에 제발 때리지 말라는 듯 ‘플리즈 플리즈 플리즈’라고 적은 태피스트리를 걸거나(노엘 앤더슨), 고장난 가전제품 등 폐기물을 모아 새로운 신체를 만들고(이예인), 전시장에서 남조세균을 비롯한 광합성 미생물을 배양하는(마르게리트 위모) 등이 그 예다. 판소리라는 전통 연희보다는 공간과 소리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전이다.

“깔끔하고 국제적인 사운드 스케이프 전시”(비엔날레 전 감독)라는 호평과, “판소리와 본인의 관계미학을 확장해 약자의 이야기로 풀어가길 기대했는데, 작품들이 제각각이었다”(미술관 큐레이터), “소리와 공간이라는 보편적 주제만 있고 광주만의 특수성은 안 보인다”(미국 아트넷 기자)는 비판이 엇갈렸다. 2018년 도입한 국가별 전시관은 31개로 부쩍 늘었지만, 각국 도시나 미술 단체에 맡긴 전시가 천차만별이고 전체 주제와도 맞지 않아 “대표성이 없고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6일 저녁 개막식에는 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지역 국회의원과 김기현 국민의힘 전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국회의원 40여명과 광주시의회 의원,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내빈 소개에만 15분이 걸렸다.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강기정 광주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홍보대사인 아이돌그룹 NCT WISH까지 무대에 오르고 47분 뒤에야 예술감독의 전시 소개와 참여 작가 소개가 이어졌다. 중국계 미국 아트 저널리스트는 “개막식에서 정치인들과 K팝 아이돌, 팬들이 뒤엉킨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12월 1일까지, 성인 8000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