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는 이 기업을 위해 태어난 단어였다. 집적회로를 처음 개발한 로버트 노이스와 ‘무어의 법칙’의 고든 무어가 1968년 공동창업한 인텔 말이다. 이후 반 세기 동안, 반도체 설계와 제조공정 모두에서 타사를 압도한 종합반도체회사(IDM) 인텔에는 도무지 틈이 없어 보였다.
지금 인텔은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될 위기다. 다우존스에서 쫓겨나면 인텔의 주가는 더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올해 들어 20% 오를 동안, 인텔 주가는 60% 하락했다.
설계·제조 모두를 가진 인텔은 이제 무엇 하나 시원치 않은, 덩치만 큰 공룡으로 전락했다. 전성기를 맞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엔비디아,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와는 극적인 대조다. 이것은 인텔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혹시 IDM 시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신호일까. 인텔은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은 삼성 반도체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목차
2. 인텔의 위기인가, IDM의 위기인가
3, 반도체 ‘수평 분업’은 계속될까
4. IDM 다시 일으킬 ‘선택과 집중’은
1. 신(神)의 추락, 인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인텔뮤지엄에 들어서면 ‘인텔의 역사=반도체의 역사’임을 체감하게 된다. 1971년 출시한 최초의 민간용 단일 칩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를 시작으로 ‘386’ ‘486’ ‘펜티엄’ 등 역사적 프로세서들이 벽면을 수놓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전직 임원은 1990년대 당시 인텔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엔비디아가 잘나간다지만 도전자도 많잖아요. 당시 인텔은 다른 회사들이 감히 반란을 생각조차 못했던 신(神)같은 존재였습니다.” 신은 지금 추락했다. 인텔 사업의 3대 축이 모조리 무너지고 있다.
▶인텔 쇼크
지난 8월 1일(현지시간)은 실리콘밸리 역사에 ‘인텔 쇼크’로 기록될 날이다.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조차 “실망스럽다(disappointing)”고 할 정도로 충격적인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128억 달러(약 17조5500억원)에 영업적자 16억1000만 달러(약 2조2100억원). 매출의 60%인 소비자 제품군은 PC 시장 포화로 성장이 멈췄고,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부문 매출은 시장 기대에 못 미쳤다. 그날 인텔 주가는 26%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