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가져오기만 하면 LNT(Leave No Trace, 흔적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사람의 90%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 한라산 정상에 올라 컵라면 먹는 게 유행이던데, 라면 먹고 나서 국물 한두 방울 남으면 별생각 없이 버리잖아요. 근데 미량의 나트륨이 식물을 말라 죽게 하고, 동식물에 피해를 줍니다.”
한국 아웃도어 활동가 중 ‘LNT 1세대’인 김영식(61)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장이 말했다.
“산에서 불시에 대변을 볼 때도 ‘삽으로 15~20㎝ 정도 파고 묻는다’가 교과서처럼 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똥·오줌도 최대한 수거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땅에 묻는다’ 가 원칙입니다. 대변을 땅에 묻는 방식도 ‘어느 정도 파면 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유기물이 많은 부식토에서 대변이 완전히 썩는 데 1년 6개월 걸린다고 해요. 황토나 진흙은 그보다 더 걸리고요. 그래서 주변에 썩은 나뭇잎 같은 부식물을 넣어주면 더 빨리 썩겠죠. 모래가 있는 흙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의 대변 속엔 수백 가지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비가 오면 계곡으로 흘러내려 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대변을 본 자리도 최대한 원래대로 하고 나와야 합니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있던 자리에 그대로 갖다 둬야 해요.”
김 대장은 10여년 전 미국 워싱턴주에 가 LNT 교육을 받고 왔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아웃도어 활동에서 윤리나 도덕을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백패킹(Backpacking) 등 활동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웃도어 활동이 어젠다로 떠올랐다. 한때 백패킹 성지로 불렸던 인천 굴업도가 무분별한 캠핑으로 1~2년 새에 ‘똥 밭’이 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최근 SNS를 통해 아웃도어 활동을 전파하는 리더들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을 잘 가르치면 수천 명의 팔로워에 전파된다는 믿음에서다. 아웃도어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모아 예술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 활동가 김 강은(33) 씨가 그의 제자다.
LNT 7가지 원칙 “그대로 둘 것”
LNT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세계 2차대전(1939~1945)이 계기라고 한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텐트와 배낭, 랜턴 등의 장비가 발달했다. 전후 민간이 이를 활용하면서 아웃도어 활동이 폭발하게 된다. 반면 사람이 늘면서 자연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연방산림청은 ‘자연에 최대한 충격을 주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70~80년대엔 국립공원, 연방토지관리국 등도 이에 동참했다. 이후 캠페인으론 한계가 인식에 따라 LNT라는 환경윤리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한다. 공식 단체는 1994년 창립했으며, 지금은 LNT 센터로 불린다. 한국엔 아직 지사가 없다. 히말라야 클린 등반에 앞장서온 한왕용 대장을 중심으로 조만간 LNT 코리아가 론칭할 예정이다. 7가지 윤리를 원칙으로 삼는다.
1. 계획하고 준비하기(Plan & Prepare)
트레킹과 등산할 장소를 사전에 파악한다. 그래야 자연에 충격을 덜 준다.
2. 안전한 장소에서 야영(Travel and Camp on Durable Surface)
새로운 야영지는 자연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야영지를 따르는 게 좋다.
3. 쓰레기를 적게 만들고 잘 처리하기(Dispose of Waste Property)
쓰레기를 적게 만들기 위해선 소분해서 포장하고, 가져간 것은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
4. 그대로 두기(Leave What You Find)
나무, 식물 등 자연의 것은 보기만 한다. 건드린 것은 최대한 원래대로 둔다.
5. 모닥불 사용 최소화하기(Minimize Campfire Impacts)
한국에선 모닥불을 피우지 못해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6. 야생동물 존중(Respect Wildlife)
자연은 자연의 것이다. 또 음식물을 남기는 행위도 동물에게 피해를 준다.
7. 배려(Be Considerate of Other Visitors)
백패커·산행객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후대를 위해 최대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또 산짐승 등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딜 가든 ‘대변 삽’ 휴대”
지난 7일 충북 충주호 서쪽 호수를 따라 조성된 종댕이길을 함께 걸었다. 2시간여의 짧은 산행에도 그는 40L 큰 배낭을 메고 나왔다. 배낭 안을 살펴보니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했다. “산을 아껴 걷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한다. 먼저 쓰레기 수거를 위한 다양한 사이즈의 비닐 지퍼백이 담겼다. 또 스테인리스 소재 ‘대변용 샵’과 티타늄 소재의 다용도 컵, 스푼·포크·나이프 기능을 모두 갖춘 다용도 식기도 들어 있었다. 티타늄 소재 컵·식기는 직접 주문 제작했다고 한다.
“티타늄은 1000년을 간다고 하잖아요. 내가 죽을 때까지 쓰고, 다음에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은 또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게 자원도 아끼고 자연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인 거죠. 200개를 만들어서 충북 지역 산악인들에게 저렴하게 보급했어요. 기자님도 실천하시죠.” 그는 배낭에서 티타늄 컵을 한 개 더 꺼내 기자에게 줬다. 다음번 산에 갈 때 아들에게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오브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