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서안지구에서 최근 튀르키예·미국 이중국적인 여성이 시위 중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중동 사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의 비무장 민간인 총격 사건 여파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미 대선의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P 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 인근 베이타 마을에서 튀르키예 출신으로 미 시민권자인 아이세뉴르 에즈기 에이기(26)가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미 워싱턴대를 올해 졸업한 에이기는 그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인 국제연대운동(ISM)에서 활동해왔다. 이날도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반대하는 ISM의 주간 시위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스라엘군은 "시위 현장에서 외국인 1명이 우리 군의 총격으로 숨졌다는 보고받아 관련 내용과 정황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위협을 가하는 등 폭력 행위를 한 주요 선동자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ISM 측은 "당시 시위가 평화적이었는데, 이스라엘군의 개입으로 충돌이 일어나고 에이기가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위에 동참했던 이스라엘인 조나단 폴락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과 국제 활동가들이 기도회를 연 직후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들을 둘러싸며 충돌했다. 주민들이 군인에게 돌을 던지고 군인들은 최루 가스와 실탄을 발포했다. 폴락은 "이후 시위대가 도망가 충돌이 가라앉은 가운데 지붕에 있는 군인 2명이 시위대를 향해 겨냥해 총을 쐈다"고 AP에 말했다. 친팔레스타인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비비 첸도 CNN에 "우리는 모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들이 그(에이기)의 머리를 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간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자지구 휴전 협정이 지연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납치된 미국인 인질이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미국 내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 여론이 더욱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행동 가능성을 열어뒀다. 7일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스라엘 정부에 연락해 자세한 정보와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공급에 변화를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본 뒤 필요한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며 "더 많은 정보가 확보되면 필요에 따라 조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관련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면 조사를 촉구했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군 정부가 저지른 살인"이라며 "우리 국민을 죽인 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