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내 소설의 뿌리, 고향과 문중
」알 수 없는 건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다. 책의 생명력 또한 모를 일이다. 내게는 쓴 나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잘 팔린 책이 여럿 있었다. 글 빚에 쫓겨 급하게 썼는데도 베스트셀러가 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그런 작품이다.
1980년 말에 출간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달랐다. 등단 1년 남짓 겁 없는 신예였을 때 한껏 야심에 부풀어 쓴 작품이었는데 한해 전 『사람의 아들』의 성공을 압도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다. 고향을 소재로 한 단편 14편을 묶은 연작소설이 시대착오적인 의고주의(擬古主義) 혹은 음울한 감상으로 비쳤는지 독자들의 손을 덜 탔다. 초판 이후 절판시켰다가 80년대 중반 출판사를 바꿔 재출간해야 했다. 남들이 내 글을 좋게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장이 남았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는지.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늙어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대 다시는…』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화영 선생은 "참다운 발견과 상실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낭만적 비전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낙원이나 행복이 그런 것처럼 고향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삶의 어떤 총체이기 때문에, 최초의 감동으로 고향이라는 마음속의 정처(定處)를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고향은 자조 대상이자 자부심의 원천
글쎄, 사라져가는 고향의 전통에서 내가 몰락하는 영광의 비장미(悲壯美)를 목격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몽롱한 유년을 섬광처럼 비추고 사라진 것일망정 고향의 세계에는 빛 또한 있었다. 고향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자조(自嘲)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내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대 다시는…』에 등장하는 정산(正山) 선생은, 부자연스러운 별호(別號)가 암시하는 것처럼 실존 인물은 아니다. 고시준비에 지쳐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주저앉은 옛 제자 현우가 일부러 인사드리러 찾아갔는데도 선생은 "군자(君子)는 불기(不器)"라며 만나주지 않는다. 군자는 한 가지만을 담는 편협한 그릇이 돼서는 안 되거늘 소설 담는 그릇, 그러니까 시정(市井)의 잡문(雜文)을 담는 그릇으로 전락한 제자를 나무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