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한때 진중한 중진들의 장이었던 국회 법제사법위는 이제 ‘막말 싸움터’와 동의어가 됐다. 대통령 부부를 향해 ‘살인자’라고 했는가 하면 ‘빌런(villain·악당)’ ‘꼬붕’까지 등장했다. 상상 그 이상의 공격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SUNDAY는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와 20·21대 국회 전체와 지난 8월 28일까지 22대 국회의 법사위 회의록 발언을 전수 조사해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의원들의 공격성 정도를 심층 분석했다. 구글의 자연어 이해(NLU) 모델인 ‘엘렉트라(ELECTRA)’를 한국어 악성 텍스트로 미세조정한 오픈소스 모델을 사용했다. 해당 모델은 일상언어에 3~3.5의 점수를 부여하고 5점이 넘어가면 공격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원색적 비방이나 욕설의 경우 7~9점 사이다.
분기별로 분석했을 때 올 3분기에 해당하는 7·8월엔 공격성 점수가 5.26점으로 20~22대 중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로 ‘살인자’ 발언이 있던 시기다. 지난달 14일 ‘검사(김영철) 탄핵소추사건 조사 청문회’에서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국민권익위 간부의 사망과 김건희 여사 의혹 건을 연결하며 “김건희, 윤석열이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라고 소리친 사건이다.
이전 분기별 최고치는 20대 국회에선 2019년 4분기로 5.05점이었고 21대 국회에선 2022년 1분기로 5.15점이었다. 전자는 이른바 ‘조국 사태’로 불렸던, 조국 법무장관 거취를 둘러싸고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곤 하던 때였다. 후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이전투구를 하던 때였다. 법사위가 ‘최전방’ 중 하나였던 셈이다.
정당별로 보면 야당의 공격성이 높은 추이를 보였다. 실제 국민의힘의 경우 여당이던 2016년 1분기 공격성 점수는 4.2점에 불과했다. 이후 탄핵 국면과 문재인 정부 시기엔 5점을 넘나들었다. 특히 2021년 2분기엔 5.86점으로 조사 기간 중 최고를 기록했다. 당시 조국 사태 여파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김오수 전 법무차관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갈등이 최고조로 증폭된 상태였다. 파행도 잦았다. 이 무렵 전체회의가 열렸을 때 장제원·전주혜·조수진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에 불참한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사회권을 넘겨받아 일방 표결을 결정한 백혜련 민주당 간사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다.
국민의힘, 여당 됐어도 거칠고… 민주당 막말 포화는 여당 네 배 1249번
장제원 의원은 “또 두드릴 것 아니냐. 이 자리(위원장석)에 자격 없다”고 했고, 같은 당 김도읍 의원은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고!”라고 공격했다.
이후 국민의힘이 여당이 된 2022년 2분기 이후엔 공격성 점수가 대부분 4점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수적 열세에 놓인 22대 국회에선 공격성 점수가 5점대로 올라섰다.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의 성예진 전임연구원은 “2018년 말부터 2022년 중순까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언어적 공격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은, 그들이 야당이자 소수당으로서 여당의 강력한 정책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필연적 대응으로 해석된다”며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 논쟁적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야당은 여당의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더욱 극단적인 언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최근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언어 공격성도 증가하는 양상”이라며 “이는 이미 누적된 정치적 갈등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정청래 의사진행 발언도 포함돼 평균 ‘희석’
민주당의 경우 야당이던 2016년 1분기엔 5.5점이었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엔 대부분 4점대에 머물렀다. 공격성 점수가 가장 낮았던 건 2021년 1분기로 4.46점이었다. 성 추문으로 오거돈 부산시장이 사퇴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하면서 민주당이 수세에 몰렸던 시기다.
민주당도 다시 야당이 된 2022년 2분기 이후 재차 공격성이 올라가고 있다. 다만 올 7, 8월의 공격성 점수는 5.24점으로 국민의힘(5.67점)보다 낮다.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데다(18명 중 10명), 민주당 소속의 정청래 위원장의 단순 의사 진행 발언까지 포함해 평균을 내는 방식이어서다. 성 전임연구원은 “위원장과 같이 발언량이 많은 경우 모델은 모든 발언의 평균적 감정을 계산하거나 발언의 강도를 분산시켜 평가하기도 한다”며 “다만 22대는 다른 대와 비교해 포함된 기간이 확연히 짧기 때문에, 20대와 21대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회의록에 등재되지 않은 발언이라 공격성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전현희 의원의 살인자 발언이 그 예로 ‘김건희가 살인자입니다! 김건희 윤석열이 국장을 죽인 거에요! 살인자입니다!’ 발언은 회의록엔 ‘장내 소란’으로만 기록됐다. 이어진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김건희 여사를 저렇게 보호하고 딸랑딸랑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등의 조롱도 기재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공격성이 과소 평가됐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끼어들지 마세요”(정청래 위원장), “목소리 크다고 계속 혼자만 떠들어”(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이게 무슨 기본권이야
공격성 발언 총량을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이 느는 추세다. 20대 국회에선 국민의힘에서 나온 공격성 발언이 2만207건이었는데, 민주당은 1만1964건이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선 역전됐다. 국민의힘에선 1만7881건이었고 민주당에선 1만8539건이었다. 국민의힘의 공격성 점수가 5점대, 민주당은 4점대였는데 그랬다.
22대에선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사실상 민주당의 단독 개원에 항의해 국민의힘이 늦게 복귀한 걸 감안하더라도 7~8월에 국민의힘이 315차례 공격적 발언을 할 때 민주당은 4배가량인 1249차례를 했다. 모두 10차례의 회의가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매회의 때마다 회의록에 기록된 것만 해도 1564차례의 공격성 발언이 있었다는 얘기다.
개별 회의 중에선 지난달 14일 청문회가 단연 두드러졌다. 5.5점의 공격성 점수를 기록했는데, 20~22대 회의 중 최고 공격성을 가진 회의였다. 해당 청문회에서만 공격성을 띄는 발언이 506차례 나왔으며, 의원들끼리 서로 “조용히 하라” 발언을 33차례 해 이 또한 역대 최다 횟수였다. 이전 최고 횟수는 2019년 12월 30일 있었던 추미애 전 장관 인사청문회의 14차례였고 20~22대 회의 당 평균 조용히 하란 발언은 0.5차례였다.
공격성 높은 발언을 하는 의원들도 특정 됐다. 민주당에서는 최강욱·김종민·민형배 의원이 각각 높은 5.8~5.9점대의 공격성 점수를 얻었고, 국민의힘에서는 장제원·김진태·권성동 의원이 각각 5.9~6.1점이었다. 이중에는 ‘채널A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인 최강욱 의원과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 대표가 정면 충돌해 논란이 됐던 2022년 8월 22일 법사위 발언도 포함 됐다. 최강욱 의원이 “뻔히 아는 내용은 인정하고 가라”고 하자 한 장관은 “말씀을 하세요 그냥”이라며 맞받아쳤고, 이에 최 의원이 “그따위 태도를 하면
의원들의 선수별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격성은 차이를 보였다. 국민의힘의 경우 초선 의원이 공격적이었다면 민주당은 초선보단 재선이, 재선보다 3선이 더 공격적 언어를 사용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의 평균 공격성은 4.9점대로 4선 이상(5.1점)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았고, 민주당의 경우 재선 의원 평균이 4.7점, 3선 의원 평균이 4.8점으로 5선 이상(5.3점)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았다. 4선으로 넘어가는 경우 양당 모두 평균 공격성이 5점 이상으로 매우 높게 올라갔다. 성예진 전문연구원은 “선수가 낮은 의원들은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다선 의원의 경우 지도부의 역할 수행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고자 공격 발언 점수가 높아졌을 수 있다”며 “다만 5, 6선 의원들의 수가 나머지 의원들 수에 비해 현저히 적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는 추가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초선, 민주당은 재선·3선 더 공격적
전문가들은 법사위의 막말 논란과 파행이 유권자들의 피로도와 정치 무관심을 증가시키고 정작 필요한 정책에 대한 논의는 진행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성예진 전임연구원은 “정치적 담론에서 공격적인 언어는 단순한 개인의 대립을 넘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협력의 여지를 좁히고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심의적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정당 간 경쟁과 권력 다툼, 그리고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의 문화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대학의 글로벌융복합콘텐츠연구소 이종명 선임연구원은 “국회방송 및 정치 보도를 통해 가장 빈번하게 주목받는 곳이 바로 법사위이고 미디어화 된 정치 발언, 정쟁 중심의 위원회 갈등과 파행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게 된다”며 “정치 고관여층에서는 극단적이고 갈등을 부추기기에 열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유튜브 등 전통적 미디어와는 다른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맥락과 맞물려 있다”고 했다. 이어 “영국의 ‘조사위원회(inquiry)’와 같이 저널리즘적 검증 전문가 집단 등으로 이루어진 신뢰성 있는 기구를 신설해 바람직한 정치 담론 실천을 검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경우 논란이 있는 사안의 경우 정쟁을 벌이다가도 공공조사위를 구성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만한 해법을 끌어내곤 한다. 코로나19 대처부터 잉글랜드 지역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 경찰의 위장 사찰 의혹 등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