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38만원 부담됐나? 절반이 ‘필리핀 이모’ 취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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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초기 취소율이 56.7%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서울시는 이 서비스 이용을 신청한 731가정 가운데 157가정을 선정했다. 한부모·맞벌이·다자녀 가정을 우선으로 했는데, 경쟁률이 5대1이었다. 영어에 능통한 ‘필리핀 이모님’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5일 김인제(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57가정 가운데 절반 이상인 89가정이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기존 신청 가정을 대상으로 추가 모집을 했고, 최종적으로 142가정과 계약했다. 또 추가 취소에 대비해, 12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라면 언제든 신청할 수 있게 모집 방식을 바꿨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처음 약정한 기한을 채우지 않고 취소하더라도 수수료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초 단순히 호기심에 신청했거나 돌봄 상황이 바뀐 가정 등이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범사업이어서 불안한 마음에 이용을 주저하거나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중도 포기한 가정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종 계약한 가정을 지역별로 보면 강남권의 비중이 더 커졌다.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구)에서 총 66가정이 계약해 46.5%를 차지했다. 필리핀 이모님을 고용한 두 집 중 한 집이 강남 4구에 사는 것이다. 첫 선발 당시 동남권 비율은 37.6%(59가정)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재원처럼 해외에 거주하며 외국인 돌봄 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는 가정이 강남권에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권을 제외한 지역은 최종 계약 건수가 줄었다. 도심권(종로·중구·용산·성동·광진·서대문·동대문) 38가정, 서북권(은평·마포·양천·강서) 19가정, 서남권(구로·영등포·동작·관악) 12가정, 동북권(중랑·성북·노원·강북) 7가정 순이었다.

중산층이 이용하기에 비용 부담이 크다는 지적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급은 최저임금, 주휴수당, 4대보험 등을 적용해 시간당 1만3700원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씩 한 달 근무하면 238만원을 받는다. 가사관리사 서비스 수요가 많은 30대 가구의 지난해 중위소득은 509만원이었다. 이들이 필리핀 이모님을 쓰려면 소득의 46.7%를 써야 하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돌봄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도입했지만, 일부만 혜택을 보는 제도가 됐다는 지적이다. 김인제 의원은 “추후 운영 실태를 봐야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시범 사업으로만 끝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한 홍콩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비용이 월 최소 83만원, 싱가포르는 월 48만~71만원 선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 법무부에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가능하도록 별도 비자 신설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현재 필리핀 가사 관리사는 정부 인증기관이 고용하는 형태로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관련 세미나에서 “E-7 비자에 돌봄서비스업을 신설해 ‘가구 내 고용방식’으로 한다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며 “법무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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