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악티부스
“돈을 버는 것도 어렵지만 잘 쓰는 건 훨씬 더 어렵네요.” 비즈니스로 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마음먹고 기부를 시작할 때 늘 하는 이야기다. 영리를 성공시킨 것처럼 기부에서도 성공할 자신이 있다며 확신하던 사람들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된다.
마리오 모리노(Mario Morino)는 1970년대 초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업계 10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다. 1992년 영리에서 완전히 은퇴한 그는 기부와 자선 활동을 하면서 남은 삶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모리노는 돈이 많았지만, 효과적인 자선 활동을 위해서는 돈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돈을 잘 쓰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공부’였다.
모리노는 1년 반 동안 700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만나 비영리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부했다. 이후 8년을 더 연구해 ‘벤처 필란트로피 파트너스(VPP)’를 설립했다. 그는 VPP를 통해 비영리 조직에 필요한 자금과 전략을 20년 넘게 제공하고 있는데, 특히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의 삶을 개선하고 기회를 늘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기부를 공부하는 부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만난 김봉진·설보미 부부는 배달의민족 창업과 엑싯으로 누리게 된 부를 어떻게 잘 나눌지 고민하고 있었다. 부부는 2021년 한국인 최초로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하면서 재산 절반 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떠밀리듯 기부금을 쓰는 게 싫어서 재단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부와 비영리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연구하는 소규모 조직 ‘봉앤설’을 만들었다.
자신만의 기부를 차근차근 펼치고 있는 김강석 블루홀(크래프톤) 공동창업자는 ‘존중’과 ‘경청’이라는 특유의 방식으로 기부를 배워가고 있다. 비영리 조직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공감하면서 생태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자들의 공부가 쌓이고 있다. 20년 후에 이들이 어떤 기부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위대한 기부자들의 성장기를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호모악티부스(Homo Activus)=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