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나온 정부 개혁안, ‘재정 안정’에 방점
보험료율 차등 인상, 연금 고갈 시점 16년 늦춰
이제 개혁의 공은 국회로…합의안 도출 서두르길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정부의 구체안이 마침내 나왔다.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가되 연금 재정의 고갈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방안을 담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연금개혁 추진 계획을 심의·확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구체안을 제시하고 연금개혁에 앞장서는 건 2003년 노무현 정부 이후 21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나가는 시점이어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구체적인 정부안을 냈다는 점에선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복잡한 자료만 나열하고 알맹이는 쏙 빠진 ‘맹탕 개혁안’이란 비판을 받았었다.
연금개혁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최우선 국가 현안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6년에는 한 푼도 남지 않고 고갈된다.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한 현행 연금은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56년 이후에도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려면 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막대한 나랏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돌아간다.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은 용납될 수 없다.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그만큼 미래 세대의 고통도 커질 뿐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정부안은 미래의 연금 고갈 우려를 해소하기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정부안에 따르면 현재 소득의 9%인 연금 보험료율은 단계적으로 13%까지 인상한다. 2028년부터 40%를 적용할 예정인 소득대체율은 42%로 올린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4%를 협상안으로 제시했었다. 정부안을 야당안과 비교하면 보험료 인상 폭은 동일하고 소득대체율은 2%포인트 낮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후 소득 보장에는 긍정적이지만 연금 재정의 안정성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는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고갈 시점을 2072년까지 16년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계는 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결국 이번 연금개혁은 끝이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연금개혁에 나서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앞으로 의회의 세부 논의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입장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연금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선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렇다고 보험료율을 똑같이 올리면 청년 세대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나 가입자 수, 경제 상황 등과 연계해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의 도입 방안도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 자동조정장치가 있으면 개혁을 자주 하지 않아도 연금 재정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국민연금을 도입한 선진국의 상당수가 채택한 제도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연금액이 깎이는 단점은 있지만 세대 간 형평성에 맞도록 기성세대에도 일정한 양보가 필요하다.
이제 연금개혁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동안 야당은 여당의 연금특위 구성 요구에 대해 “정부안이 먼저”라고 대응했었다. 이제 정부안이 나왔으니 여야는 최대한 신속히 합의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내후년 지방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연금개혁을 추진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소모적 정쟁이 아니라 우리 국가와 후대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정치의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