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7화. ‘한국판 드레퓌스’의 부활을 꿈꾸며
」이중간첩의 덫은 공작원을 겨눈다. 공작원, 즉 스파이의 세계에서 정보의 주고받기(give-and-take)는 관행이다.
남북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중국은 남북 첩보전의 뜨거운 무대다. 대한민국의 대북공작원과 북한의 대남공작원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공생과 기생을 하며 요긴한 정보를 서로 맞교환한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때로는 비밀리에. 그래야 거래가 지탱되고, 공작원의 존재 가치가 있다.
적(敵)과의 동침은 불가피하다. 공적 또는 사적으로 인간적 친분을 쌓고 거리감을 좁혀야 유용한 첩보를 습득한다. 거래 유지 차원의 정보 거래를 벗어나 국가적 군사적 기밀을 채취하려는 유혹은 공작원의 직업적 본능을 자극한다.
남은 북을 상대로, 북은 남을 상대로 공작원을 이중간첩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는 집요하다. 역(逆)공작이다. 탐나는 기밀에 접근해 유출할 수 있는 적임자가 공작원이다. 남이든, 북이든 공작원에게 이중간첩이라는 배신의 유혹은 어쩌면 숙명적이다.
공작장교에서 이중간첩으로
정규필 전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예비역 대령은 중국에서 활동한 공작원이었다. 현역 시절 북한 공작원들과 활발히 접촉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보와 비밀을 캐낼 수 있다.
정규필은 취재팀에게 북한 요원(사실상 공작원)들과 찍은 수십장의 사진과 서신들을 보여줬다. 식사를 함께하며 인맥 관리를 했고, 북한 공작원의 베이징 나들이에 동행한 기록도 있었다. 공작 차원에서 벌였던 임무와 활동이었다.
이게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겨눌 줄은 미처 몰랐다. 비현실적이지만 진짜로 이중간첩으로 몰렸다. 공작장교로서 직업적 생명과 명예는 추락했다. 개인 삶은 치욕적이고 피폐해졌다.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2022년 7월)→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봉사활동 160시간(2024년 1월)→형 확정(2024년 5월)
지난 4년의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정규필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그는 재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대법원까지 간 재판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보사 후배와 공작원들 모두가 죄인이 될 것이다.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누명을 벗고 결백을 입증해야 할 대북공작원으로서 의무가 있다.
정규필은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린다. 유대인 출신 프랑스군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대위는 1894년 독일 대사관에 기밀을 넘긴 간첩 혐의로 기소돼 종신형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 팽배하던 반(反)유대주의의 희생양이 됐다. 대문호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필두로 진실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섰고, 결국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정규필은 드레퓌스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