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김일성 신화의 진실
」② 김일성을 둘러싼 가짜 논쟁
」두 번의 결혼과 아들 김정일·평일
1941년에 김일성은 김정숙(金貞淑)이라는 한 여인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심양(瀋陽)의 문서고[檔案]에 따르면, 김정숙은 1917년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났는데, 국문을 이해하는 정도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정숙은 1932년에 만주로 이주한 아버지를 찾아 연길현 팔도구(延吉縣 八道溝)로 갔다가 1935년 동북항일연군제1지대에 입대했다. 그는 아동단과 청년단에서 활약했으며 체포된 사실은 없었다. 그는 1938년 3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부대 안에서 취사 업무를 맡았다. 그는 1940년 10월에 부대를 따라 소련으로 이동했다(楊昭全, 966쪽).
김일성과 김정숙은 빨치산 시절인 1942년 2월에 결혼해 그해에 맏아들 정일(正日, 유라)을 낳고 1944년에 둘째 아들 평일(平日, 슈라)을 낳았는데, 중앙일보 정창현의 기록(1999, 254쪽)에 따르면, 이 둘째 아들은 1948년에 주석궁 연못에서 익사했다. 죽음의 이유는 김정일의 실수였다고 한다. 그 뒤 김정숙은 1949년 출산하다가 사망했다. 김일성은 아내를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김일성은 1951년에 비서 김성애(金聖愛)와 재혼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아들이 출생하자 이미 비운에 죽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따서 다시 평일로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주(駐)폴란드 대사를 거쳐 주(駐)체코 대사를 지낸 그 김평일이다. 이 사건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애증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며, 김정일이 평일을 볼 때마다 형제 살인의 죄의식(fratricide anxiety)이라는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