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피의자 문재인’ 적시…검, 공정하고 원칙 있는 수사 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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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딸 압수영장에 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검찰, 신속·공정한 수사로 보복 논란 극복해야

전주지검이 지난달 3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법원에 청구한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했다.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씨가 2018년 7월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실소유주인 타이이스타젯 항공에 전무로 취업한 것이 이 전 의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해 준 대가라는 것이다. 검찰은 서씨가 2020년 4월까지 받은 급여와 주거비 등 2억2300여만원을 뇌물로 보고 있다.

여러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비리로 처벌을 받은 마당에 직전 대통령마저 피의자로 수사를 받게 됐으니 국민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야당은 “국면전환용 정치보복”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문 정부 청와대나 내각에서 일한 인사 37명은 “전임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워 윤석열 정부에 분노하는 국민 시선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단한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는 수사 검사 탄핵 등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업계 경험이 전혀 없는 서씨가 국내 항공사의 해외 법인 임원으로 임용된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누구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어디에나 취업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공직을 거래했다면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다. 섣불리 정치적으로 예단할 것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수사를 맡은 이정섭 검사에게 확인도 안 된 혐의를 적용, 탄핵소추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됐었다. 불과 며칠 만에 똑같은 행태라면 다수당의 폭거일 뿐이다.

검찰도 사안의 무게가 막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건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발된 지도 3년이 넘었다. 의혹이 있다면 서둘러 조사해 기소하거나 혐의가 잡히지 않으면 신속히 종결해야 했다. 그런데 수사를 질질 끌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서야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으니 나빠진 여론을 돌리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란 뒷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검찰은 입증이 까다로운 제3자 뇌물죄가 아닌 직접뇌물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연관성과 금품 수수 사실 외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인사 책임자들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공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고 뇌물죄 입증이 쉬운 것도 아니다. 문 전 대통령과 다혜씨 가족이 경제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정치보복 차원의 망신주기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신속, 공정, 엄정한 수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