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첫 회담을 열었다. 양당 대표의 시각 차는 컸으나 공동의 관심사와 접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11년 만에 이뤄진 여야 대표회담에서 정치 복원의 싹을 찾아볼 수 있던 이유다.
이날 회담은 두 대표의 모두발언에 이어 양당 정책위의장과 수석대변인이 배석한 정식 비공개 회담(102분), 이후 배석자 없는 둘만의 대화를 포함해 174분간 진행됐다. 회담 직후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과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동발표를 통해 “양당의 ‘민생 공통 공약’을 함께 추진할 협의기구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현안인 의료사태와 관련해서는 “추석 연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을 정부에 당부하고,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당은 또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 ▶반도체·AI 산업,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을 위한 지원 방안 ▶가계·소상공인 부채 부담 완화 지원 방안 ▶육아휴직 확대를 위한 입법 과제 ▶딥페이크 성범죄 제도적 보완 방안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지구당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협의하거나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22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96일 만에 열리는 국회 개원식을 하루 앞두고 협치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회담 시작부터 두 대표는 확고한 정치 복원 의지를 드러냈다. 모두발언에서 한 대표는 “우리 두 사람이 정쟁의 중단을 대국적으로 선언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정치개혁의 비전에 전격 합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화와 타협이 일상이 되는 정상적 정치 복원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3+3 회담’이 열린 접견실로 향한 이 대표는 폭이 넓은 테이블에 마주 앉자마자 “이래서는 화 나도 멱살도 못 잡겠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비공개 회담에선 양측의 인식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한 대표가 “폐지하자”고 주장했으나, 민주당 지도부는 “폐지는 안 된다”며 완화론을 꺼내들었다. 한 대표가 재차 “최소한 내년도 시행하는 부분은 유예하고 계속 논의하자”며 ‘스몰 딜’을 시도했으나, 이 대표는 “금투세 시행 여부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비정상적인 여러 양태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맞섰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해 온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서도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일각선 “애초에 합의 힘든 회담”… 윤 대통령은 국회 개원식 불참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차등 지원, 선별 지원을 하겠다면 그것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니 적정한 선에서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한 대표는 “현금을 직접 살포하는 정책은 하지 않겠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쟁점 사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입장이 난처한 건 이해하지만, 말씀하셨던 것이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니 이제는 결단해 달라”고 압박했던 순직 해병 특검법은 입장 차만 확인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앞서 한 대표가 제안했던 제3자 특검 추천 방식과 제보 공작 의혹까지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기한에 맞춰 당의 입장을 낼 순 없다”고 맞섰다. 대변인의 전언도 엇갈려 민주당 조 대변인은 “한 대표 본인은 ‘(특검) 의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했으나, 국민의힘 곽 대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양당 대표는 심각성엔 공감했지만, 해결 방향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당초 의·정 갈등 이슈는 의제에 포함하지 않았으나, 이 대표 주도로 꽤 긴 시간 동안 논의됐다고 한다.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나 책임자 문책, 대책 기구 구성 등을 요청했으나 한 대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대 때 별도로 한 대표가 이 대표에게 “민주당의 대책이나 방안이 있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그 외에는 특별히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2일부터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전국 응급실 현황과 환자 수를 비롯한 응급실 이용 정보 등에 대한 일일 브리핑을 시작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회담 결과를 놓고 한 대표와 이 대표의 당내 다른 위상을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 ‘일극 체제’로 협상 전권을 쥔 거대 야당 대표와 회담 뒤에도 정부와 보폭을 맞춰야 하는 여당 대표의 차이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통화에서 “애초부터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었던 회담”이라면서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를 상대하려면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 당의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보니 야당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2일 열리는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하는 것은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들어선 제6공화국 체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고 나서 대통령을 초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