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쫓아낸 쿠데타도... 페이팔 마피아들의 성공시대[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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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설계자들  

지미 소니 지음
박세연‧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0년 설립된 온라인 결제시스템 운영사인 페이팔은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 이 회사 창업자와 초기 근무자들이 회사를 나온 뒤 실리콘밸리 각 분야에서 『삼국지연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못지않은 ‘대하드라마’를 쓰면서 세상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인 지은이는 페이팔의 기업문화와 함께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역동성, 그리고 개성과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일론 머스크는 이 드라마의 햄릿급 주연. 1999년 온라인은행 X.com을 공동 창업한 그는 1998년 맥스 레브친과 피터 틸 등이 설립한 소프트웨어업체 칸피니티의 간편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의 간편함에 매료됐다. 두 회사는 2000년 합병해 페이팔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일론 머스크가 2020년 중국 상하이에서 테슬라 모델 3 이미지가 투사된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2020년 중국 상하이에서 테슬라 모델 3 이미지가 투사된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지은이는 지금은 누구나 당연시하는 현금 없는 사회, 온라인‧모바일 송금이 20년 전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여준다. 성과는 창의성‧열정과 함께 치열한 논쟁과 권력의지의 합작물이었다. 이는 고스란히 디지털 분야 스타트업 기업문화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능력과 함께 개성과 야망도 넘치는 사람들의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았다. 초기 페이팔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특히 머스크와 틸은 서로 격렬하게 부딪혔다. 이토록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어떻게 협업하고 어떤 방식으로 충돌했는지가 생생하다. 기업의 운명은 물론 세상까지 바꿔놓은 역동성이다.

2000년 1월 결혼한 머스크가 신혼여행 대신 그해 9월 시드니 올림픽을 보러 간 사이 그의 독선을 문제 삼은 이사회에서 일으킨 쿠데타는 잔혹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머스크는 쫓겨났지만 페이팔은 2002년 온라인 상거래업체 이베이에 무려 15억 달러에 인수됐다. 경영진과 직원이 이를 나눠 가졌다. 여기까지는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도전‧혁신‧가치창조‧성공의 빛과 알력‧배반의 그림자를 모두 갖춘 드라마의 1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속편이다. 이후 4년이 되지 않아 페이팔 초기 직원 50명 중 38명이 회사를 떠나 새 인생을 시작했다. 이들 중 거액을 싸들고 카리브해 휴양지에 가서 여생을 즐기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페이팔 동문' 또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이들은 자금‧경험‧네트워크로 혁신 비즈니스를 창조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잘 알려진 대로 머스크는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와 민간우주업체 스페이스X를 이끌었다.

디지털 분야에선 광채가 날 정도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 지역정보 서비스 업체 옐프, 전문직 인맥서비스로 유명한 소설네크워크 서비스 업체 링크드인,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 등이 이들이 창업‧투자하거나 운영하는 혁신기업이다. 페이스북 초기 투자가이자 스페이스X의 첫 기관투자가인 자산 120억 달러의 벤처캐피털 엔젤 투자사 파운더스 펀드도 여기에 포함된다. 테크놀로지 시대의 사생활보호, 실리콘밸리의 차별 철폐는 물론 표현의 자유, 금융 규제, 소득 불균형, 암호화폐의 유용성 등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온 다양한 사회‧문화‧정치적 논쟁에서도 이들은 중심부를 이뤘다.

페이팔 창업자‧근무자는 상당수가 스탠퍼드대나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배경은 다양하다. 팔란티어 이사회 의장, 파운더스 펀드 파트너, 투자사 클라리움 캐피탈 회장을 맡은 엔젤투자가 피터 틸은 독일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변호사로 일하다 창업했다.

어펌의 CEO인 맥스 레브친(왼쪽)과 넬리 레브친이 지난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미디어 및 기술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어펌의 CEO인 맥스 레브친(왼쪽)과 넬리 레브친이 지난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미디어 및 기술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연매출 23억 달러의 금융 테크업체 어펌의 최고경영자 맥스 레브친은 소련의 우크라이나 유대인 출신으로 10대 때 체르노빌 방사능 분석용 컴퓨터로 소프트웨어를 독학하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매킨지의 경영컨설턴트를 거쳐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았던 데이비스 색스는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은 게임회사와 애플, 후지츠 등에 다니다 페이팔을 거쳐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지은이는 이들이 모두 함께 일했던 페이팔의 초기 모습이 어땠을지 의문을 풀기 위해 머스크를 비롯한 창업자와 경영진은 물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서비스‧콘텐트 디자이너, 네트워크 설계자, 제품 전문가, 사기 방지 담당자, 지원부서 직원 등 수백 명을 접촉해 페이팔의 초기 모습을 재구성했다. 수많은 내부자료에도 접근했다.

지은이는 페이팔 성공의 중심에는 이런 인물들과 함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부를 넘어 희망의 설계자였다. 원제 The Founders: The Story of Paypal and the Entrepreneurs Who Shaped 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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