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상황 인식, 민심과는 거리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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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응급실 아우성인데 “비상진료체계 원활 가동”

야당 협조 말고 대안 없는데 영수회담 선 그어

연금개혁안 정부와 여야 머리 맞대 완성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민심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윤 대통령이었기에 취임 2주년 회견(5월 9일) 이후 석 달여 만에 또다시 기자들과 일문일답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로 평가된다. 다만 이번에도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시중 민심과 괴리를 드러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지금 벌어지는 의료 차질 사태에 대해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진료체계가 그래도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지금 전국의 병원 응급실마다 의사 인력 부족으로 과부하가 걸려 아우성이다. 얼마 전엔 야당 국회의원의 부친이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 ‘뺑뺑이’를 돌다 상태가 악화되는 일도 있었다. 추석 연휴 기간엔 응급진료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아무리 상황을 낙관적으로 봐도 지금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채 상병 사망사건 특검’ 문제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 관련 청문회에서 이미 외압의 실체가 없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아주 꼼꼼하고 장기간 수사해 수사 결과를 책 내듯이 발표했고, 언론이나 많은 국민이 수사 결과에 대해 특별한 이의를 달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또한 논란을 부를 발언이다. 채 상병 사건에서 대통령실이 얼마만큼 관여했는지는 아직 명확지 않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제삼자 추천 특검’ 아이디어가 나왔겠는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방식이나 장소가 정해질 수 있는 것”이라며 “저도 검사 시절 전직 영부인에 대해 멀리 자택까지 찾아가 조사한 일이 있다”고 감쌌다. 특혜 시비에 대한 국민 정서를 헤아렸다면 더 낮은 자세를 보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야당에 대한 인식도 경직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양자회담 가능성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일단 여야 간에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이렇게 해서 국회가 해야 할 본연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대표와 만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그러면서 “지금 청문회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가 이때까지 바라보던 국회하고 너무 달라서 저도 깊이 한번 생각해 보겠다”며 “국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거대 야당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인데, 개혁 법안과 예산을 처리하려면 현실적으로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길 말고는 어떤 대안이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회견 때도 현안에 대한 입장이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기존 입장을 완고하게 되풀이하는 느낌을 줬다. 자기 생각을 강변만 하지 말고 사안에 따라 민심을 수용하는 유연한 자세가 아쉽다.

한편 윤 대통령은 어제 회견에서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 ▶연금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연금 국가 지급보장 법률 명문화 등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안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모수개혁도 실패했는데 22대 국회는 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다.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 조속히 합리적인 연금개혁안을 완성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