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31년 이후 감축목표 세워야” 미래세대 환경권 인정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양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양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소장 이종석)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법은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2020년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제기된 기후소송에서 4년 반 만에 미래세대의 기본권 침해를 인정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헌재는 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정부에 “2026년 2월 28일을 시한으로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법 개정 전까지는 기존 법령을 그대로 적용하라고도 했다.

헌재 “감축 계획 미흡, 미래세대 기본권 침해”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퍼센트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정하고, 대통령령(시행령) 3조 1항은 이 비율을 ‘40%’로 정해뒀다.

이 법은 또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0가 되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워뒀는데, 2030년 이후엔 구체적으로 해마다 어떻게 탄소배출량을 줄여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이에 대해 2031년부터 20년간의 배출량 감축 목표를 대강이라도 정해두지 않은 것이 실질적으로 탄소배출량 감축에 제약이 된다며 청구인들 및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위험상황으로서의 기후위기’를 인정하면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의 불가역성과 감축의 긴급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국가의 감축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헌재는 지금의 감축 노력이 사실상 미래 세대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명시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며 “국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보호조치를 마련하며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미래 국민의 자유 보장 및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미래세대는 정치 참여도 어렵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입법책임이 정부에 있다”고도 했다.

관련기사

헌재는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이라며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의 부담을 가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며 “2031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대강의 내용은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의 40% 감축’ 목표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파리협정에서 정한 ‘이용 가능한 최선의 과학에 따라 급속한 감축을 위해 최대한의 의욕 수준’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긴 어렵다는 이유다.

헌재는 “구체적 수치를 정할 권한과 책임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에게 있고, 특정 연도의 구체적 수치를 놓고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2018년은 총배출량을 기준 삼고(7억 2760만톤) 2030년은 불확실한 탄소포집 기술 등을 포함한 순배출량(4억 3660만톤)을 기준 삼아 감축 비율을 정한 게 잘못됐고 충분하지 못한 보호조치, 환경권 침해’라고도 주장했지만, 재판관 5인(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만 위헌 의견을 표시해 심판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해 위헌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이날 대법정 100여석은 선고를 들으러 온 방청인들로 거의 대부분이 찼다. 연합뉴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이날 대법정 100여석은 선고를 들으러 온 방청인들로 거의 대부분이 찼다. 연합뉴스

이날 선고가 이뤄진 헌재 대법정에는 청구인들과 대리인단, 관련 단체 활동가들이 참석해 약 100석의 방청석을 거의 다 채웠다. 이종석 소장이 “주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헉!”하는 탄성이 터졌고 일부 방청객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결정은 그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책임과 미래 세대의 부담 가중을 막을 헌법적 의무를 확인한 것과 같은 맥락의 결론이다.

2021년 3월 독일연방헌법재판소도 ‘2050년 탄소배출 0’만 정해두고 2031~2050 구체적 목표 정해두지 않은 데 대해 “국가의 의무 위반이고, 2030년 감축 목표도 미래세대의 감축 부담이 과도해져 현재의 행동이 미래의 기본권을 돌이킬 수 없게 침해한다”며 ‘통시적 기본권’ 개념을 인정했다. 그에 앞서 2021년 10월 파리행정법원도 ‘온실가스로 인한 생태피해는 지속적으로 누적적이고, 현재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 건 국가의 의무위반’ 이라며 국가배상책임 1유로를 인정한 바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