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주머니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4가구 중 1가구꼴로 가계부가 적자 상태로 나타났다. 소비 온기도 고소득층에서만 돌고 있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3.5% 늘었다. 물가 상승률까지 반영해 실제 주머니 사정을 보여주는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0.8% 늘었다. 1분기에 1.6% 줄었다가 반등했다. 지난해 2분기 3.9% 감소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정체하는 모양새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실질소득이 고물가로 마이너스(-)였다가 최근 물가가 둔화한 영향으로 플러스(+)로 바뀌었다”며 “취업자 수가 늘며 근로소득이 증가한 영향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소득보다 씀씀이 증가 폭이 더 컸다. 2분기 지출은 381만1000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4.3% 늘었다. 8분기 연속 지출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넘어섰다. 월셋값과 전기·가스요금 등 냉·난방비 등 주거·수도·광열(7.1%) 지출이 많이 증가했다. 버스·지하철·택시 등 교통(6.9%) 지출도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내수 침체로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은 대신, 물가가 올라 나가는 돈은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세금과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非)소비지출’은 99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3.7% 증가했다. 줄이기 어려워 흔히 ‘숨만 쉬어도 나가는’ 지출로 불린다. 비소비지출에서 주목할 만한 항목은 대출 상환 등에 쓰는 이자비용(12만5000원)이다. 비소비지출의 12.5%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4.8% 줄었다. 가계대출액은 늘었으나 가산금리를 포함한 가계대출금리가 낮아진 영향이라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영향은 3분기부터 이자비용으로 반영될 전망이다.
‘적자 가구’ 비율은 23.9%로 나타났다. 전체 가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적자 상태란 의미다. 1년 전보다 0.9%포인트 늘었다. 2021년 2분기(24.4%) 이후 3년 만에 적자 가구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적자 가구란 처분가능소득(소득-비소비지출)보다 소비 지출이 많은 가구를 말한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5만9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3.7% 늘었다. 기초생활보장 강화 등으로 이전소득(10.5%)이 늘어난 영향이다. 근로소득은 7.5% 줄었다.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065만2000원으로 같은 기간 5.1% 늘었다. 빈부 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6배로 지난해 2분기(5.34배) 대비 소폭 올랐다. 배율 상승은 분배지표 악화를 의미하지만, 0.02배 차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지갑을 더 연 건 고소득층이었다. 5분위(상위 20%) 가구가 소비를 6.8% 늘리는 동안, 1분위 가구는 1.9% 늘리는 데 그쳤다.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율)은 59.0%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올랐다. 1분위 가구 평균 소비성향은 126.6%로 같은 기간 3.1%포인트 내렸다. 경제회복의 온기가 골고루 확산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기업·정부가 빚 부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근 내년도 초(超)긴축 예산까지 편성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어려워졌다”며 “기준 금리를 내리고 소비 진작 대책을 마련하는 등 내수 온기를 전반으로 퍼뜨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