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김일성 신화의 진실
」①청년 마르크시스트의 탄생
」어린 시절 평양에서 교회 다녀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에 평양 만경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성주(金聖柱)였으나 항일 투쟁 과정에서 김일성(金日成)이라는 변성명을 쓴 것이 그 뒤 본명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가문이 선산(善山) 김씨라고 했는데(‘삼천리’ 1938년 11월호) 남한에서는 전주(全州) 김씨로 알려져 있다. 전주 모악산에 선산이 있어서 그렇게 와전된 것 같다. 선대(先代)에 가세가 어려워 살길을 찾아 전주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대대로 소작살이를 했기 때문에 집안은 매우 어려웠다. 만경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金膺禹)였다.
김응우는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 사건(1866) 당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항쟁에 참여했다고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1: 8 =1권 8쪽을 뜻함. 이하 같음)에서 기록했으나,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참전’에 의미를 둔 것 같다. 내가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어린이 병동의 건축에 다소 도와준 인연으로 2007년에 그곳 초청으로 방북했을 때, 김일성의 만경대 생가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김응우가 제너럴 셔먼호를 격파하는 장면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미국 측의 ‘자복서(自服書)’가 복사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번역한 그리피스(W. E. Griffis)의 『은자의 나라 조선』(Corea: The Hermit Nation, 1888)이었다. 곁에 있던 조영건(曺永建·영남대) 교수가 ‘수행하던’ 보안원에게, “이분이 이 책의 번역자”라고 소개했더니 보안원이 놀라 그 뒤로 대우가 달라졌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5~1926)은 평양 숭실(崇實)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으며 한약방을 경영했다. 어머니는 강반석(康盤石: ?~1932)이었는데 ‘반석’은 기독교에서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의 외할아버지 강돈욱(康敦煜)은 칠골교회 장로로서 북한 부주석으로 최고인민회의 중앙위원이며 기독교연맹위원장인 강양욱(康良煜) 목사의 육촌형이다.
김일성은 예배당에 자주 다녔다. 그 집안은 손원일(孫元一) 제독의 아버지 손정도(孫貞道) 목사와 가까웠으며, 김일성은 손 목사의 딸인 손인실(孫仁實)과 눈깔사탕을 한 번씩 나누어 빨아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설처럼 회상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지도자는 대체로 젊은 날에 기독교를 믿었다. 김일성은 뒷날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조직을 이끌 때 주일학교에서 배우고 암시받은 바를 많이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