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여행(혼여), 좋아하시나요? 저는 가끔씩 홀로 떠나는 편입니다. 도심으로 여행을 갔을 땐 아침 일찍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걸 즐기곤 해요. 출근 시간, 바쁘게 움직이는 현지인들을 관찰하며 ‘오늘, 회사 안 가도 된다’를 만끽하는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혼밥, 혼술, 혼노래방 등 혼자 하는 대부분의 일이 자연스러운 일본에서도 혼자 하는 온천 여행은 ‘고수의 영역’으로 꼽혀 왔습니다. 온천 여행이란 건 가족·친구들과 함께하거나, 회사 동료끼리 단합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거든요.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혼자 가는 온천 여행을 뜻하는 ‘솔로 온천’ ‘히토리(一人) 온천’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온천 마을의 숙소들도 ‘1인 손님 환영’을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공영방송 NHK가 방영 중인 ‘느긋하게 혼자 온천 여행(ゆったり温泉ひとり旅)’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것도 영향을 줬죠.
그리하여 오늘은 이번 가을 혼자 2박3일 일본 온천 여행이나 가볼까 하는 분들을 위해 ‘솔로 온천’ 최적의 장소를 소개해 드립니다. 한국에서 훌쩍 다녀오기 좋은 곳은 역시 규슈(九州)에 있는 온천들일 거예요. 규슈는 도쿄(東京)보다 서울과의 거리가 더 가까우니 비용도 적게 들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쉬운 온천이 많습니다.
규슈의 온천이라 하면 많은 분이 오이타(大分)현에 있는 벳푸(別府)나 유후인(由布院)을 떠올립니다. 벳푸는 원천(原泉)의 수, 용출량에서 모두 일본 1위를 자랑하는 대규모 온천지죠. 인근 유후인은 아기자기한 온천 마을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온천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지키고 있고요.
하지만 혼자 온천으로 떠날 땐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보단 다소 한적한 곳이 좋아요.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나와의 합숙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조용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규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곳의 온천, 구로카와(黒川) 온천과 우레시노(嬉野) 온천으로 갑니다.
‘혼온’을 떠날 땐 책 한 권을 챙겨야죠. 1인 가구의 정신적 지주인 쇼펜하우어 선생님의 책을 골라봅니다. 일찍이 그는 말씀하셨죠.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때는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고독할 때라오.”
미슐랭도 반했다, 구로카와 온천
구마모토(熊本)현 아소(阿蘇)산 자락에 있는 구로카와 온천은 후쿠오카(福岡) 공항이나 시내 버스터미널에서 직통버스를 타고 갈 수 있어요. 2박3일로 떠난 길이라면, 입국하자마자 구로카와 온천으로 향했다가 다음 날 후쿠오카로 돌아와 쇼핑 및 먹방을 마친 후 돌아오는 일정이 가능합니다. 후쿠오카에서 구로카와 온천까지는 3시간이나 걸리지만 가는 길의 풍경이 기가 막혀요. 자동차 두 대 정도 지나는 좁은 도로가 깊은 산속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버스 바로 옆까지 드리운 울창한 나무 숲에 마음이 금세 시원해집니다.
해발 70m의 산속에 있는 구로카와 온천 마을은 옛 온천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다노하라(田ノ原)강 줄기를 따라 아담한 온천 료칸 3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전부입니다. 유명 온천지에서 볼 수 있는 대형 호텔도 없고, 관광객들로 붐비는 온천 상점가 같은 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2009년 여행지에 별점을 매기는 ‘미쉐린(미슐랭) 그린가이드 재팬’ 편에서 온천으로는 드물게 별 2개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변하지 않는 소박함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힘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