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마트 매대서 쌀 사라졌다…"전쟁 났나" 난데없는 쌀 대란, 왜[줌인도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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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난데없는 쌀 부족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른바 ‘레이와(令和)의 쌀 소동’입니다. 레이와는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인데, 레이와 시대 들어서 발생한 쌀 소동이란 뜻입니다.

마트마다 쌀이 놓여졌던 판매대는 텅 빈 상황. 지난 25일 찾아간 일본 도쿄의 한 슈퍼마켓도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쌀이 놓여 있어야 할 곳엔 즉석밥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 명 당 5㎏짜리는 한 개, 2㎏짜리는 2개까지 살 수 있다”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이 곳에 쌀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레이와의 쌀소동으로 불리는 일본의 쌀부족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 25일 일본 마트 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일부 마트에선 쌀 대신 즉석밥을 진열해 팔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레이와의 쌀소동으로 불리는 일본의 쌀부족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 25일 일본 마트 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일부 마트에선 쌀 대신 즉석밥을 진열해 팔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쌀이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으니 직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2주 전부터 이런 상황이 이어졌는데, 언제 쌀이 입고될 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란 겁니다.

매장에서 쌀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해당 마트 직원은 “인터넷에선 쌀을 살 수 있는 상황이라, 나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고 전했습니다. 수도권에 해당하는 가나가와현 상황도 마찬가지. 잡곡류는 일부 남아있지만, 쌀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 일본에서 쌀이 사라졌나

쌀이 사라진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폭염입니다. 작년 여름에 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작황이 좋지 못했다는 겁니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쌀 민간 재고량은 전년 대비 41만t 적은 156만t. 그 사이 난카이 대지진 경보가 발령되고, 제10호 태풍 산산이 일본 열도로 찾아올 것으로 예고되면서 사람들이 ‘대비용’ 쌀 구입에 많이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또 전례 없는 엔저 현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서 평소보다 쌀 수요가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지요.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농림수산성이 발표한 지난 7월 도매가격은 60㎏ 당 1만5626엔(약 14만4200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13%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레이와의 쌀소동으로 불리는 일본의 쌀부족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 16일 일본 마트 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레이와의 쌀소동으로 불리는 일본의 쌀부족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 16일 일본 마트 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쌀 소동의 역사

일본에서 쌀 부족으로 대란이 일어난 건 1918년(大正 7年) 8월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쌀이 부족해졌고, 쌀값이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할 곳도 마땅치 않았는데, 쌀이 부족해지자 사재기가 시작됐습니다. 급기야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후로 쌀 수급이 사회 문제가 된 건 1993년(平成 5년)입니다. 이른바 '헤이세이 쌀 소동' 인데요. 이때의 쌀 부족 원인은 기록적인 날씨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레이와 쌀 소동이 폭염 때문이었다면, 헤이세이 쌀 소동은 기온이 낮아서 발생했습니다. ‘시원한 여름’이 되면서 쌀 작황이 좋지 않았던 거죠.

당시 쌀 수요가 1000만t 가량이었는데 생산량은 783만t에 그칠 정도였습니다. 쌀 부족 상황이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는 태국과 미국 등에서 쌀을 긴급 수입하고, 비축미를 풀기도 했습니다.

최근 쌀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오사카부는 정부에 비축미를 풀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나섰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27일 “시장을 주시해 원활한 유통 대책을 마련해 달라”면서 정부 비축미를 푸드뱅크 등에 무상으로 지급하는 제도 확충 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쌀 부족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농림수산성은 “곧 수확철이 다가오니 조금씩 품귀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나섰는데요. 햅쌀이 본격적으로 출하될 때까지, 한동안 일본에선 쌀 부족 상황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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