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소득·거주지가 좌우하는 대입…‘잃어버린 인재’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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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입사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목동 일대의 학원가 모습. 중앙포토.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입사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목동 일대의 학원가 모습. 중앙포토.

한은 보고서 “상위권 대 진학에 부모 경제력 효과 75%”

‘지역별 비례선발제’ 통해 계층 이동 제언 검토해볼 만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은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이를 분석하는 각종 연구가 이뤄지는 이유다. 대표적인 것이 ‘위대한 개츠비 곡선’으로 소득 불평등(지니계수)과 계층 이동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9년 부모의 학력·소득 수준과 자녀의 성공(성적과 소득) 여부를 측정한 ‘개천용지수’(기회불평등지수)를 발표했다. 이들 지수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소득과 부모의 학력이 낮을수록 계층 이동과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며 사회경제적 지위 대물림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그 심각성이 드러났다.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좌우했다.

상위권대 입학생의 ‘서울 쏠림 현상’은 상당했다. 2018년 서울대 진학생(일반고 기준) 중 서울 출신은 32%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은 12%였다. 전체 일반고 졸업생 중 이들 지역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16%, 4%)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소득에 따른 진학률 격차도 컸다. 2010년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소득 최상위층(5분위)의 상위권 대학(상위 8개 대학·의대·치대·한의대·수의대) 진학률은 최하위층(1분위)의 5.4배에 달했다.

중1 수학성취도 점수로 측정한 학생의 잠재력과 대학진학률을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학생의 잠재력이 같다고 할 때 상위권대 진학에 부모의 경제력이 미치는 효과는 75%에 달했다.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할 때 92%는 거주 지역 효과였다. 가난하지만 잠재력이 큰 지방 학생보다 평범하지만 부유한 서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더 얻는다는 이야기다. 사교육 환경과 이를 감당할 경제력이 차이를 만든다는 게 한은의 아픈 진단이다.

입시 경쟁이 사교육 과열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부담과 부모의 경제력 등에 따른 교육 불평등 심화는 저출산과 수도권 집중, 서울 집값 상승, 지방 소멸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기며, 국가의 혁신을 주도할 동량을 놓치는 ‘잃어버린 인재’ 현상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한은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했다. 계층 대물림을 단번에 해결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기회의 평등을 통해 계층 이동의 길을 열어 둬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안정과 성장을 위한 국가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