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15일 함경남도 신포 바닷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에어컨이 설치된 흰색 천막 안에서 노동당 고위 간부, 군 지휘관들과 지방경제 발전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지역에 수산사업소와 대형 양식장을 건설해 양식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북한이 방영한 회의 영상에는 야전 지휘소를 연상케 하는 대형 천막 한쪽 벽면에 양식장 조감도와 관련 정보를 적어놓은 패널이 서 있었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와 얘기를 나누는 2명의 군 지휘관을 제외한 20여명의 간부가 핸드폰을 들고 패널 앞으로 모여들어 연신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디지털 시대에 집권한 김정은
행사 사진 대량 공개하며 통치
간부들 녹음기, 핸드폰으로 대체
다양한 소프트웨어 사용은 제한
#2. 지난 4일 평양에서 진행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수인계 행사장.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 가운데 군복을 입은 4명이 발사대 앞에 서서 기념사진 촬영 포즈를 취했다. 다른 참석자 2명은 각각 핸드폰으로 이들의 사진을 찍었고, 이런 광경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됐다.
북한에서 손전화라고 부르는 핸드폰은 외국인, 내국인, 업무용(간부용) 등 용도에 따라 앞번호가 다르다. 1911, 1912, 1913 등이다. 일부 핸드폰을 제외하곤 용도가 다른, 즉 앞자리가 다른 핸드폰끼리 전화가 되지 않는다. 보안을 위해서다. 하지만 핸드폰에 탑재된 카메라는 번호와 상관없이 작동한다. 최근 북한이 공개하는 영상이나 사진 속에는 북한 간부나 주민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북한에 보급된 핸드폰 숫자가 700만 대를 넘어섰고,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북한 간부들의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찍어야만 산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졸면 죽는다”와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 공포정치를 일삼았는데 자신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현영철 총참모장을 총살시켰다는 소문도 돌았다. 김 위원장이 하는 말을 꼼꼼하게 받아 적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적자생존’이라는 말도 생겼다.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자리에서 짝다리로 서 있거나, 먼 산을 바라보곤 했던 그의 고모부 장성택은 2013년 12월 처형됐다. 이후 김 위원장이 자리하는 곳에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경쟁하듯 받아 적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적자생존’의 분위기는 김일성 시대 때부터 내려왔다. 김일성은 수시로 회의를 소집하거나 간부들을 대동하고 현지지도에 나서곤 했는데 그를 수행하는 간부들은 항상 수첩과 필기구를 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당시 사진에는 필기구뿐만 아니라 일본제로 추정되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함께 들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이용한 녹음 장치가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녹음테이프를 장착하고 김일성의 얘기를 녹음하는 것이다. 혹여라도 지도자의 지시를 놓치면 가장 큰 불경죄에 해당하다 보니 녹음기가 필수품이었던 셈이다.
김정일,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수첩을 든 간부들의 모습은 그대로다. 차이라면 김정은 시대엔 녹음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별도의 녹음장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신포 협의회’처럼 간부들이 핸드폰으로 업무 참고자료를 촬영하는 모습은 ‘적자생존’에 ‘찍자생존’이 더해지는 분위기다. 녹음기에서 핸드폰으로 바뀌고, 녹음은 기본에 ‘찍는’ 풍경이 추가된 것이다.
김정은과 사진 찍으면 출셋길
김정은 시대 들어 또 달라진 건 그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대량으로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열병식 등 다수의 사진 공개가 필요할 경우 월간지로 발행하는 『화보 조선』이나 별도의 화보집을 활용했다. 일반 현지지도나 공개활동은 노동신문에 사진 1~2장을 공개했던 게 전부다. 사진을 소개할 수단이 종이로 한정돼 있었고, 김정일 시대엔 그나마 부족했다. 1990년대 후반 극도의 경제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은 『화보 조선』도 격월간으로, 종이 크기 역시 B4에서 A4 사이즈로 줄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삼지연 방문 때 63장을 비롯해 많을 경우 한 번에 70장이 넘는 사진을 온라인 매체에 싣는다. 사진을 대거 내놓다 보니 군사작전 지도나 각종 통계 수치 등 북한이 비밀로 여기는 내용이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북한은 김 위원장 위주로 촬영하되 배경에 찍혀 있는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흐리게 모자이크 처리한 뒤 내보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유독 단체 사진 촬영을 즐긴다는 점도 특징이다.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처럼 북한이 기념비적이라고 내세우는 대형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나 열병식 참가자, 지난달 말 수해지원에 나섰던 헬기부대원들도 김 위원장과 단체 촬영을 했다. 지난 5월엔 김 위원장이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고도 다음 날 별도로 일정을 잡아 한 그룹당 1000명 가까운 사람을 모아 12그룹과 촬영에 나섰다. 수백 명이 군복처럼 같은 옷을 입고 촬영을 하다 보니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영광의 기념사진”이라거나 “참가자들은 감격과 환희에 넘쳐 있었다”고 선전한다. 북한 주민들이 신처럼 여기는 최고지도자와 사진을 찍은 것 자체를 자랑으로 여기게 함으로써 사진 촬영을 일종의 심리적 보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건 향후 당원 가입 때 가장 확실한 신분 보증 수단으로, 그리고 혹여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참작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도부 입장에선 사진 정치지만 주민들에겐 팔자를 펴는 ‘은혜’를 입는 셈이다. 단체 촬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핸드폰에 이를 저장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시’하려 할 것이다.
현대인은 디지털 신인류라는 뜻으로 호모디지쿠스로 불린다. 핸드폰이 일상으로 파고 들면서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도 이런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에 올라탔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외부 정보 유입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노래 감상이나 게임, 내비게이션, 컬러링 등 한정된 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카메라 등의 하드웨어 기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10년, 아니 5년 뒤엔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게 될 게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