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에 최고 시속 120㎞의 바람이 불어 일부 공항이 폐쇄되고 기차가 연착했는데 골프 대회는 강행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AIG여자오픈(이하 브리티시 여자오픈)이다. 몸이 바람에 흔들려 어드레스도 어렵고 한여름에 털모자를 써야 할 정도로 추웠다.
일부 선수들은 “경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불평했지만 엘리트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이 악조건을 반긴 듯하다. 악천후는 인내심이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를 가르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조지아 홀은 “이런 게 진짜 골프다. 악천후 때문에 대회를 취소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올드 코스는 이번에도 골프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승자 리디아 고와 신지애, 넬리 코다를 비롯한 상위 5명은 모두 세계 랭킹 1위 혹은 랭킹 1위 출신이었다. 올드 코스는 단조롭고 황량하며 억지로 전장을 늘려 옹색해 보인다.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이 늙은 골프 코스는 최고의 선수를 골라내는 변별력이 있다.
타이거 우즈는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3번 우승했는데 그중 두 번이 올드 코스에서였다. 잭 니클라우스도 똑같다. 디오픈이 5년에 한 번 올드 코스에서 열리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여자 오픈에서도 그랬다. 올드 코스에서 열린 이전 두 번의 대회 우승자는 당대 최고였던 로레나 오초아와 스테이시 루이스다.
올드 코스는 골프의 고향이다. 테니스 선수가 윔블던이 열리는 올잉글랜드 클럽 센터코트를 꿈꾸듯, 골프 선수들은 올드 코스를 동경한다. 잭 니클라우스는 “선수로서 기억되고 싶다면 올드 코스에서 우승해야 한다”고 했고,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는 “내 인생에 다른 기억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올드 코스에 대한 기억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최고 테니스 선수가 되려면 잔디 코트, 하드 코트, 클레이 코트를 두루 경험해야 하듯, 최고 골프 선수가 되려면 미국식 코스뿐 아니라 자연이 만든 링크스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KLPGA 소속 선수는 한 명도 가지 않았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열린 대회를 표방해 여러 투어의 상위권 선수들에게 출전권을 준다. 그러나 KLPGA는 자체 메이저대회가 열릴 때 소속 선수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AIG 여자오픈 기간 KLPGA 투어의 메이저대회인 한화 클래식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