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에서 11년 동안 카페를 운영한 40대 김모씨는 최근 폐업을 결정하고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다. 김씨는 “코로나 땐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도 배달 주문이 종종 있었고 정부 지원도 있어 버텼다”며 “요즘은 매출도 안 나오는데 재룟값이 계속 올라 장사를 이어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에서 6년간 해온 파스타 식당을 접은 30대 박모씨는 낮엔 자격증 공부를 하고 밤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사장님’이다. 박씨는 “가게 문은 닫았지만 사업자 대출 3000만원이 남아 있어 폐업을 미뤘다”며 “지금은 집 주소로 사업 소재지를 등록하고 통신판매업 신고를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빚을 갚고 취업해서 월급쟁이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내수 부진과 고물가·고금리에 자영업자들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중엔 폐업하고 싶어도 대출 잔액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고 ‘유령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을 중단하고도 통신판매업으로 업종을 전환해 사업자 번호를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다.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가 폐업하면 추가 대출이나 만기 연장이 불가능해 매장이 필요 없는 업종으로 전환하는 궁여지책이다.
이런 유령 영업까지 감안하면, 자영업자 실질 감소세는 드러난 통계보다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만2000명(-1.1%) 줄어든 572만1000명으로, 6개월 연속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장 기간 감소세다. 올해 상반기 폐업한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노란우산 공제금은 758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8% 늘었다. 올해 노란우산 공제금 지급액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1조2600억원)를 뛰어넘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은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대출을 늘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5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2년 3분기 말 0.19%에서 올해 1분기 말 1.52%까지 꾸준히 올랐다. 한국은행은 “과거 금리 상승기와 비교하더라도 최근의 연체율 상승세는 가파른 편”이라며 “상환 능력이 부족한 취약 차주의 연체가 늘어나고 있어 당분간 자영업자의 연체율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폐업을 결정한 김포시의 김씨도 “장사하면서 여기저기 빌린 돈이 다 합치면 1억원인데, 가게 보증금을 돌려 받으면 대출 상환보다는 당장 생활비로 써야할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업종별 맞춤형, 창업 때부터 지원해야
정부는 지난 7월 정책자금 분할상환, 재취업·재창업 지원, 판로 확대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배달 수수료 지원을 위한 내년도 예산 편성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종별 특성에 맞는 복합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최근 자영업자 폐업은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결과가 아니고, 내수 침체로 모두가 위기에 처한 결과”라며 “위기를 넘기기 위한 금융 지원이 급하지만, 장기적으론 업종별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정부 정책은 일률적인 금융 지원 성격이 강했다”며 “업종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폐업한 자영업자에 대한 교육 훈련 지원도 중요하지만 창업 전부터 컨설팅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금융 지원으로 자영업자가 일단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그 이후부터는 자영업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 여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